10년 넘게 비주류 … '나는 남들과 달라' 신념으로 버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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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값을 묻자 ‘스타 화가’는 신념을 말했다. 장샤오강은 “1982년 쓰촨미술학원 졸업 후 4년가량 쿤밍의 가무단에서 일했다. 낮엔 무대 디자인을 했고 밤엔 아마추어 즉 비(非)전업 화가로 혼자 그림을 그렸다. 그 뒤 10년간은 모교에서 강의를 했다. 그 14년 사이 내 그림은 나 자신을 대변할 뿐, 주위에 ‘당신 작품은 너무도 중요합니다’라고 말해 주는 이는 없었다”라고 돌아봤다.

 - 인정받지도 못했고, 생계에 도움도 안 됐던 그림을 10년 넘게 이어간 이유는.

 “미술, 특히 동시대 미술을 한다는 것은 중국 미술계 내에서도 비주류의 길을 택하는 일이었다. 냉랭한 현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작업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 없이 숨쉬듯, 살아가듯 그렸을 뿐이다. 남들이 생각하듯 내게 작품 가격은 중요치 않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많은 화가들이 그림이 팔리리란 생각 없이, 신념만으로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 신념이라니.

 “‘남들과 나는 달라’ ‘내겐 뭔가 믿음이 있으니 힘들어도 계속해 나갈 수 있어’ 하는 마음이었달까. 젊었을 땐 그런 신념으로 즐거웠다. 그렇게 매일 그리다 보면 조금씩 발전돼 가는 게 보였다. 지금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제 잘난 맛’인지도 모르겠다.”

 - 중국 미술 시장이 비대해진 지금, 젊은 화가들에겐 와 닿지 않는 얘기겠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신념에 의지해 그리고 있을 거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은 성공에 대한 압박이 훨씬 강해졌다는 것, 그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한다는 것보다 더 힘든 상황일 게다.”

 베이징 아트미아재단의 진현미 대표는 “장샤오강이 지나온 세월은 중국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역사”라며 “그의 작품이 가진 가장 독보적 가치는 서구 표현주의를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재·사상·관념·스타일에서 독자성을 확보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진 대표는 재작년 심장병 수술을 받고 난 장샤오강을 만났던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삶의 고통과 작가로서의 고통을 모두 맛보았다. 그러나 이 고통 또한 너무도 아름답다.” 화가가 그의 작품처럼 담담하게 했던 말이란다.

장샤오강은 6월 대구미술관(관장 김선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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