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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재판 비공개 증언했는데 북한에 신분 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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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해 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비공개 증언을 했던 북한 공작원 출신 귀순자 A씨(44)가 “증언 뒤 내 신분이 노출돼 북한에 사는 딸이 보위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탄원서를 담당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에 낸 것으로 1일 드러났다.

 이날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1월 14일자 탄원서에 따르면 A씨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남파됐다가 2003년 귀순했다. 이후 특별보호 ‘가급’으로 분류돼 11년째 경찰관 3명으로부터 24시간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고 한다. A씨는 지난해 12월 6일 유우성(34)씨 간첩사건 항소심 공판에 비공개 증인으로 출석, 유씨 가족의 북한 행적에 대해 증언했다. A씨는 증언 한 달 뒤인 지난 1월 6일 유씨 고향인 북한 회령에 거주하는 딸(24)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1월 3일 직장으로 보위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회령시 보위부 반탐과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딸은 “보위부원이 ‘너의 아버지가 남조선에서 조국을 반대하는 짓을 한다면 너희 친인척 모두를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한 뒤 세 시간 만에 집으로 보내줬다”고 했다는 것이다.

 A씨는 “남한에서 이름·주민번호를 바꾸고 휴대전화도 남의 명의를 쓰며 신분을 철저히 감췄는데 북한 보위부가 개명 사실과 재판 출석을 알고 재북 가족을 조사한 것은 매우 이상하다”고 지적한 뒤 재판부에 “정보유출자를 찾아 엄중히 처벌하면 좋겠지만 자식들이 저와 통화한 게 드러나 처벌받을 것 같아 못한다.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도록 정의로운 판결을 해달라”고 탄원했다. 국정원 측은 “당시 비공개 재판은 판검사와 유씨, 변호인 2명만 참석했다”며 “유씨 측이 북측에 A씨의 신원정보를 넘긴 게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씨 변호인 측은 “우린 A씨의 인적사항조차 모른다”고 일축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도 “실제 북한에 신원이 넘어갔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수사할 상황은 아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탄원서 기재내용만으로 범죄 단서가 발견된 건 아니다”며 “현 단계에서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지방경찰청은 유씨 변호인인 장경욱(46)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서 북한 통일선전부 인사들과 접촉하며 북한동조 발언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및 남북교류협력법 위반)로 그를 수사 중이다. 탄원서의 진위를 조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편 검찰 증거조작 수사팀은 탈북자 단체가 ‘유씨 측 출입국 기록도 위조됐다’며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유씨에게 피고발인 신분으로 2일 나와 달라고 소환 통보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고발사건뿐 아니라 증거조작 수사 흐름상 확인할 부분이 있어 본인 조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6~7일께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 국보법상 날조죄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 등을 설명할 방침이다.

정효식·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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