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주의 위협하는 여론조사 조작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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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곳곳에서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여론조사가 의사결정의 참고자료가 아니라 최종 결정수단으로 변질된, 다분히 한국적인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유성엽 전북지사 예비후보와 조지훈·유대희·김병수·장상진 전주시장 예비후보 등이 ‘착신전환을 통한 선거여론조사의 가능성’을 집중 제기했다. 객관적인 상황을 보도하거나 공천에 참고하기 위해 실시하는 언론사·정당의 여론조사에 후보자가 의도적으로 개입, 왜곡하는 악성 사례다. 여론조사 기간에 맞춰 단기 전화를, 예를 들어 1000회선을 대거 빌려서 이를 수십 개의 응답 가능한 전화번호로 착신 전환해 놓고 선거운동원으로 하여금 응답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때 응답자는 기계의 자동 질문에 대해 성별이나 연령대를 필요에 따라 수시로 바꿔 거짓 대답을 하게 된다.

 착신전환을 통한 여론조작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본격화돼 2012년 민주당과 통진당의 야권단일후보 경쟁 때 기승을 부렸다. 당원 민주주의가 깨지고 국민을 더 중시한다는 포퓰리즘적 정당문화가 이런 환경을 조성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이른바 ‘상향식 국민경선’이란 이름으로 ‘여론조사 100% 공천 방식’을 확산시킬 것으로 예상되는데 조작된 여론조사에 휘둘리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면 여론조작 시비에선 비켜가게 될 것이다.

 최근 양산시장 예비후보인 조문관·김종대·홍순경씨가 “모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특정 후보의 지지율이 50% 이상 나와 선거 승패가 이미 결정됐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있다”는 주장을 해 선관위가 조사에 나섰다. 요건을 갖춘, 제대로 된 조사도 아니면서 나도는 여론조사 결과는 흑색선전과 다를 바 없다. 후보들 간에 불신이 커지고 유권자 간에 냉소와 정치허무주의가 퍼져 선거가 끝난 뒤 주민자치가 파괴되는 부작용이 불 보듯 뻔하다. 중앙선관위와 검찰·경찰은 여론조작 자체가 범죄행위이니만큼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불법 의심 사례를 적발해 선제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