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리콜에 휘청이는 G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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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파산에서 부활한 미국 자동차 왕국 제너럴모터스(GM)의 늑장 리콜이 베일을 벗고 있다. GM은 문제가 된 자동차의 결함을 알고도 제때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했어야 할 규제당국조차 수수방관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그 사이 점화스위치 불량으로 에어백이 펼쳐지지 않아 13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GM 코발트 승용차 등의 점화스위치 불량과 에어백 미작동 자료들을 두 차례나 검토하고도 공식적인 조사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GM의 늑장 리콜 건을 조사 중인 미 하원 에너지·상무 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NHTSA가 관련 결함에 대한 자료를 확보한 것은 7년 전인 2007년이다. 당시 NHTSA는 4건의 치명적인 충돌사고 때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관된 문제 패턴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GM의 해명을 믿고 정식 조사는 불필요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2010년엔 해당 결함에 대해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서도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NHTSA는 성명을 통해 “2007년에 여러 자료를 검토했지만, 당시 입수된 자료만 가지고는 정식 조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NYT는 “NHTSA가 훨씬 적은 정보로도 조사에 착수한 사례가 적지 않다. 2012년 에어백이 펼쳐지지 않는다는 단 한 건의 소비자 민원에 근거해 실시한 현대차 조사가 그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당시 조사는 지난해 현대차의 19만 대 리콜로 이어졌다.

 GM이 점화스위치가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을 알고도 교체하지 않고 사용했다는 정황도 새로 공개됐다.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부품업체인 델파이사가 새로운 점화스위치 디자인이 GM의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경고했음에도 GM이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또 GM이 2004년 소비자 민원에 따라 점화스위치에 관한 자체 조사를 벌였으나 기술진들이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부품 교체를 거부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GM에 대한 조사는 확대일로다. 미 하원과 상원 외에 연방검찰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GM은 이미 23만5000여 쪽 분량의 자료를 제출했다. 미 하원과 상원은 다음 달 1일과 2일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와 데이비드 프리드먼 NHTSA 국장대행 등을 출석시켜 사태의 전말을 따진다. 진상조사의 초점은 세 가지다. GM이 왜 기준 미달 부품을 사용했는지와 왜 리콜을 일찍 하지 않았는지가 규명 대상이다.  

한편 GM이 지난달 29일 소형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49만 대, 쉐보레 크루즈 콤팩트 17만 대를 추가로 리콜함에 따라 올해 GM의 리콜 규모는 480만 대로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 리콜 규모 75만8000대의 6배를 넘어섰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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