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도의 최남단 「코모린」곶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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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도의 최남단인 「코모린」곶은 「벵골」해·인도양·「아라비아」해가 합치는 묘한 지점이다.
이곳을 찾기 위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폰디체리」에서 약간 내륙으로 들어간 「힌두」교 순례의 땅인 「마두라」에 들렀다가 여기서 「버스」를 갈아탔다. 시골을 다니는 이 「버스」는 고물차인데 승객들이 꽉 차서 아침인데도 숨이 확확 막힐 지경이었다.
아침, 어떤 마을에 「버스」가 멎었을 때 여러 집의 뜰에서는 부인들이 나와서 한결같이 엎드리고 앉아서 석회 같은 것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니 남인도에서는 매일아침 가정주부는 뜰에서 하얀 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힌두」교도들이 그날의 안녕과 행운을 바라기 위한 것이라 한다.
정류장마다 「버스」는 내리고 타는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이 남인도중에서도 특히「코모린」곶에 가까운 지역은 열대지역이어서 농사를 수시로 짓는데 한 논에서는 벼의 모를 심고있는가 하면 다른 논에서는 타작을 하고 있어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없다. 물만 잘 대주면 농사는 잘될텐데 관개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 논이 말라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투티코린」이란 마을을 지날 때였다. 「아랍」상인들이 무역을 하던 곳이라는 옛 항구엔 「이슬람」교 사원이 있어 마침 신자들이 예배를 보고 있는데 이곳 여자들은 「파키스탄」처럼 얼굴을 설핏한 천으로 가리는 「차도르」를 머리에 뒤집어쓴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는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과 원수처럼 되었지만 이 나라 안에 이렇듯 자유로운 신앙의 자유를 주고 있는 것이 야릇하기만 하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고 있는 이 나라의 차원 높은 사고방식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코모린」곶에 가까워졌을 때 천주교성당이며 신교교회가 「힌두」사원, 「이슬람」사원과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은 다신교를 믿는 이 나라 사람의 기질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코모린」곶에 내려 갈수록 「데칸」고원의 끝인 「카다몬」산맥에 가까워지는지 지세가 달라지며 사구를 넘는가 하더니 저 멀리 검푸른 바다가 보였으며 조금 더 가니 왼쪽과 오른 쪽에도 바다가 펼쳐졌다.
바로 왼쪽은 「벵골」해, 오른쪽은 「아라비아」해, 「코모린」곶부터 남쪽으로는 인도양이다. 마침 강한 편서풍이 불고 있어 바다는 설레건만 이 「코모린」곶에 오자마자 가장 남쪽 끝인 지점의 바닷가로 달려가서 왼쪽 오른쪽 앞쪽의 세 바다의 물이 합친 곳에서 여기까지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물로 우선 세수를 했다.
이 「코모린」곶은 「힌두」교도들에겐 「카니야쿠마리」(거룩한 처녀)라고 불린다. 이곳은 성지로서 「힌두」교도들은 여기서 목욕하면서 특히 아침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교도인 나에게도 경건한 종교적인 어떤 법열이 솟구치는 것은 아마도 세 바다를 찬란하게 물들이는 저녁놀과 함께 「힌두」신전이 나를 지키듯이 우뚝 솟아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연과 사원의 조화! 이것은 이 나라가 지닌 진 선 미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바닷가의 싸구려 여인숙에 들어 일찍 쉬었는데 어둔 새벽녘에 눈이 떠지기에 혹 남십자성이 보이지나 않을까 하여 밖에 나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인도양의 아스라한 검은 수평선 위에 그 별이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새삼 밤의 신비와 함께 이 별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칠레」에서는 어찌나 남십자성을 받드는지 나라의 상징처럼 모시지만 「힌두」산의 성지 「코모린」곶에서 보는 이 별은 더욱 성화되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별빛, 내 가슴에는 도덕률』이란 글을 남긴 「칸트」가 이 인도성지에서 남십자성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엊저녁 우연히 사귄 「민나」라는 미국 처녀의 호의로 뗏목고깃배를 빌려서 바다로 나가기로 했는데 바람이 가라앉지 않아 파도가 심하게 표류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이 여성은 인도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고 여행하는지가 3개월째인데 여행이야말로 최대의 스승이라고 했다.
앞 바다로 꽤 나갔을 때였다. 이 여성은 무슨 연애감정이라도 솟구치는지 『이렇게 뗏목을 함께 타고 사나운 바다를 항행하니까, 마치 방황하는 화란인과 그의 숙명적인 여인 「젠타」같네요. 정사를 하더라도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과연 진취적인 것은 미국의 여성이었다. 갓 사귄 사이인데도 서슴지 않고 털어놓으니 말이다.
몇 시간을 이 뗏목배로 싸다니다가 바닷가로 돌아왔을 때 이 미국 여성은 나더러 『한국의 바이킹』이라고 추켜 올려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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