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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봤나요, 하월시아 … 이베이에 소문났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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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희귀식물 ‘하월시아’를 수출하는 주광준·명준(앞부터) 형제에게 하월시아 화분은 보물 같은 존재다. 이들은 아직 20대지만 형제가 키운 하월시아는 일본 하월시아협회가 발행하는 잡지의 표지 사진으로 선정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구리=김상선 기자]

25일 오후 서울 강남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거리인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여기저기 비닐하우스만 눈에 띄는 허허벌판에 주광준(27)·명준(25)씨가 경영하는 영농법인 ‘지양’이 자리 잡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니 수천 그루의 ‘하월시아’와 ‘에케베리아’가 늘어서 있다. 하월시아와 에케베리아는 선인장이나 알로에처럼 육즙이 많은 ‘다육(多肉)식물’의 일종이다. 선인장과는 달리 가시가 없다. 에케베리아는 모양이 화려한 것이 대부분이고, 2005년부터 열풍이 불어 집에서 키우는 사람도 많다. 하월시아는 일반인에겐 매우 낯설다. 크기는 에케베리아에 비해 훨씬 작다. 10년 키워야 5㎝, 크게 자라야 10~15㎝다. 모양은 알로에나 선인장을 중간에 잘라놓은 것처럼 뭉툭하게 생겼다. 독특한 무늬는 잎의 끝 부분에 형성된다.

 “잎사귀 생긴 모습, 잎사귀 무늬가 뻗어나간 모양, 흰색과 자색 선이 형성된 모양 하나에도 호불호가 갈리고 가격이 달라져요. 10여 년간 어떻게 재배하느냐에 따라 ‘못난이’가 되기도 하고, 명품으로 태어나기도 하죠.”

 동생 명준씨가 하월시아 잎들을 하나씩 어루만지며 설명했다.

 세상에 식물은 많다. 그러나 형제는 그중 가장 희귀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하월시아를 선택했다. 20대 중·후반인 젊은 형제의 사업 경력은 벌써 6년째다. 형제의 하월시아 인생은 2005년 시작됐다. 가족이 취미로 이곳에 130여㎡(약 4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지어 에케베리아와 하월시아 몇 개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형제는 금세 다육식물, 특히 하월시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취미가 인생을 걸고 하는 사업으로 바뀐 계기는 한 중국인 고객이 제공했다. 물어 물어 구리까지 찾아온 이 고객은 형제가 키운 하월시아 2종을 약 200만원 주고 사더니 “원하는 물건을 샀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이를 본 형제는 하월시아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15~20년 이상 키워야 해 매우 희귀하다는 점,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파트에서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점, 세상에 알려진 지 30~40년밖에 되지 않아 시장이 커질 여지가 많다는 점이 형제의 욕구를 자극했다. 명준씨는 “하월시아는 무엇보다 성장이 느리기 때문에 희소성과 관상미를 추구하는 매니어 시장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현대인이 열광할 만한 ‘반려 식물’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고 본 것이다.

 동생 명준씨는 2009년 “대학에 가는 대신 형과 함께 하월시아를 재배해 세계시장을 뚫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님은 이런 명준씨를 말리는 대신 “이젠 스펙보다는 전문적인 사람을 찾는 시대가 왔다”고 격려했다. 2006년 한 외국계 은행 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아버지(59)는 퇴직금에 지인들의 투자와 그간 모아놨던 재산을 더해 자본금을 마련해줬다.

하월시아 ‘지양’. 무늬와 색상, 잎의 모양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여기서 나온 1년 된 어린 하월시아가 400만원에 팔렸다. [구리=김상선 기자]

 개별 상담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해외 고객들에게 판매를 시작했다가 2010년 영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수출을 더 늘릴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이베이코리아 온라인수출 프로그램 교육을 받고 지난해 미국 이베이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형 광준씨는 “전 세계 고객에게 노출된다는 점, 그리고 각국에 흩어져 있는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니어층이 뚜렷한 하월시아 판매에 적격”이라고 말했다. 형제는 지난해 처음으로 참가한 이베이 판매왕 경진대회 때 5개월여 만에 6000여만원어치를 팔았다. 최고상인 ‘미래 창조 온라인 해외수출 대상(장관상)’도 탔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아직 젊은 형제가 형제가 남들이 하지 않은 제품에 뛰어든 데다, 온라인을 통해 식물 수출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영농법인 대표인 동생 명준씨가 품종개발과 재배를 맡고, 광준씨는 사이트(www.haworthia.co.kr)에 판매할 하월시아 사진을 직접 찍어 일주일에 50~100개씩 올린다. 국제전화와 e메일·메신저 등으로 다양하게 이뤄지는 수출상담은 형의 몫이다. 1320여㎡(약 400평) 땅에 660여㎡(약 200평) 규모의 온실을 마련하고 키워서 팔기까지 수년이 걸려 초기에 5억원 정도의 투자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4인 가족과 직원 2명 등 6명이 한 해 6억~7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중 수출이 많을 땐 80%를 차지한다.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도 주문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미국과 일본·중국은 물론 아제르바이잔·요르단·모리셔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주문이 오지요. 하월시아 원산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주문한 고객이 물건 잘 받았다고 했을 때 어찌나 뿌듯했는지.”

 형 광준씨의 말이다. 이들은 아직 젊지만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쌓기 위한 노력을 쉼 없이 한다.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것은 신품종 개발이다. 지금까지 20여 차례 종자 수입을 위해 일본 등 해외 구석구석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종자를 들여와 농장에 20㎡(약 6평) 정도 개발실을 갖춰놓고 수정해 신품종을 개발한다. 인공조명을 위해 수십 개의 형광등이 설치돼 있고,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맞춰지는 이곳에선 손톱 크기만 한 신품종 수백 종이 자라고 있다. 명준씨는 “3년을 키우면 애기 주먹만큼 커지는데 이때 화분에 옮겨 심는다”고 설명했다.

 신품종 개발은 비밀 유지가 필수다. 명준씨는 “100개를 수정하면 ‘엄마’보다 예쁜 거는 2~5개 정도 나온다”며 “이 중 물건 될 만한 애를 가려내려면 다시 3~5년을 기다려야 하고, 또 몇 년이 더 있어야 그중 하나가 명품으로 태어나는 등 엄청난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키우고 있는 2만여 개의 하월시아에 품질보증서 역할을 하는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이미 수출된 하월시아까지 관리한다. 하월시아는 흙이 없이도 3~4개월을 버틸 수 있고, 배송기간이 길어져도 무리가 없어 수출에 여러모로 적합하다. 하지만 그래도 고객에게 최적의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 우체국 배송 마감 직전인 오후 4~5시에 상품을 들고 우체국에 나오고, 배송도 EMS 특송을 이용하는 등 신경을 쓴다.

 형제는 “2005년 하월시아 재배를 시작할 때는 해외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이젠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했다. 그간 판매한 것 중 최고가는 한 개 900만원짜리였다. 중국계 고객이 5개를 3000여만원에 사간 적도 있다. 이베이에서 팔린 것 중 최고가는 2개에 280만원이었다. 한 개 200만원짜리가 넘는 초고가 제품은 온라인에서 팔지 않고, 상담을 통해서만 판매한다. 형 광준씨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을 팔아서는 승산이 없다”며 “사는 사람이 아닌 파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진 시장, 명품을 갖고 있으면 부르는 게 값인 시장에 뛰어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리=최지영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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