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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 외국유학시절<제49화>(23) 정인섭|김진섭·이하윤과 제동서 함께 하숙|여학생과 함께있다가 일본형사 찾아와 당황|헤어진후 그녀위해 쓴 시가 『가을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29년을 전후하여 서울로 돌아온 해외문학파 동인들은 아직도 유학시절의 꿈이 가시지 않았다. 나도 연전의 교단에 서게 됐지마는 유학생 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동입구근처 하숙집(제동60번지·구식기와집이 지금은 양옥이 되었고 뒤쪽에 있던 대문도 옆으로 옮겨졌다)에는 네사람이 함께 유숙하고 있었다.
대문에 들어서자 바른편 문간방은 두간이나 되는 기다란 큰방이었는데 여기는 정인섭이 유숙하고 있었고, 그다음 왼쪽으로 꼬부라져 인접한 단간방에는 손우성이 투숙하고 있었고, 또 그 다음 왼쪽에 연달아 있는 방으로 약간 들어가있는 단간방에는 김진섭이 벌써 한해전부터 체류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우성방과 마주 보는 동쪽 건너편 방에는 이하윤이 투숙하고 있었다.
이 네사람은 외국문학 연구회 발족부터 서로 절친했고 또 그 중추역할을 해왔던 분이었을 뿐 아니라, 이하윤과 정인섭은 동경서 함께 비밀결사『한빛』모임의 동지였으며 거기다가 『해외문학』잡지를 편집하여 출판한 책임자였다. 이리하여 그들 넷은 각각 직장은 다르다 해도 틈만있으면 같은 집에서 서로 허물없이 지냈다.
그런데 그당시 김·손·이세사람은 모두 결혼한 사람이었지만 나 하나만 미혼의 총각이었다.
동덕여고의 최×순교유는 그학교 졸업생「블루·스커트」(성은 조·항상 푸른치마를 입고 다녔다)를 중매하려했고, 「색동회」동인 조재호는 윤×호의 딸윤×희를 중매하려 했다.
이럴즈음 내가 전에 초대받아갔던 친구의 처제인데 갑자기 내 하숙을 찾아왔다. 내방은 문간방이어서 급히 그녀를 내방안으로 안내했다. 내가 그때 연전선생으로 취직하고 있었던 만큼 다른 사람들이 알까 싶어서 우리 두사람의 신을 방안에 들여놓고 보통 내가 외출할때 하듯이 바깥문까지 닫고 방안에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아가씨는 그가 며칠후에 결혼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였지만 그동안 나와 자주 교제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녀의 언니와 형부의 권유로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기로 확정이 됐다. 그래서 내게 미련의 인사겸 작별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래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받고하는 판인데, 갑자기 바깥덧문이 왈칵 열리기에 나는 황급히 그녀를 방중간에 있던「커튼」뒤쪽에다 숨겨놓고 연달아 미닫이를 여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전에 어디선가 내가 본일이 있는 일본인 형사였다.
그는 아무말도 않고 방안을 둘레둘례 살펴보더니 별 이상이 없다는 듯이 다시 문을 닫아주고는 그냥 돌아갔다.
그당시 연전은 일븐당국의 주목을 받고 있었고, 또 이하숙은 우리들 네사람과 해외문학파의 중심인물들이 출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은연중 이하숙집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낮인데 방안에 사람이 있으면서 왜 바깥문까지 닫혀있을까 하는것이 그 형사의 의문점이었던 모양이다. 방안에서 아무런 사건도 꾸미지 않은것이 분명하자 그 형사는 다시 돌아간 것이다. 나는 안심하고 다시, 바깥문을 닫고는 시골집에서 갖고온 곶감을 내서 그녀를 대접하며 둘이서 같이 먹고 있었다.
그럴즈음 이하윤이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뜰에서 나를 부른다.
그래서 나는 문을열고 나가니 이하윤은 나를 보고 그입술에 묻은 횐가루가 뭐냐고하기에 내가 손으로 문질러보니 먹고있던 곶감의 흰가루가 입가에 묻혀 있었다.
나는 『곶감 가루야!』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그녀가 돌아간후에 그는 그게 곶감가루가 아니라 여자의 분이 입에 묻은것이 아니냐고 놀려댔다.
나는 그후로도 그게 곶감가루였다고 변명을 했지만, 그하숙에 같이 유숙하던 김진섭과 손우성도 이하윤의 말에 동조하여 친구들과의 모임에서까지 항상『곶감가루』이야기를 꺼내서 나를 놀려댔다. 그것이『분가루』라고 우겨대는 것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변명을 해도 내말이 잘 통하지않으니 나도 늘 빙글빙글 웃기만했다.
이하윤은 그가 작고하기 전까지도 해외문학파 동인이었던 친구들과 합석하는 날이면 항상 이 곶감가루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일동을 한바탕 웃기는 버릇이 있었다. 이것이 모두 동경유학시절의 우정이 얽히고 설킨 허물없는 사이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고 나는 오히려 달갑게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되는 아가씨는 사실상 내가 결혼할 뻔했던 분이고 또한 잊지못하는 여성이다. 그 후 1년지나서던가 경부선 기차안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나서, 그녀가 안고오던 아기를 내가 안아주고 서울역광장에서 작별하고는 다시 못만났다. 그녀에게 몇번이나 편지를 쓰려다가 못쓴 심정을 노래로 지어 정순철이 작곡한것이 『가을밤』이란 것이다.
-가슴에 그려둔 그사람에게 편지쓰려는 가을밤이여-
창밑에 훌적이는 명 짧은 실솔
애처로운 가곡이 가슴에 젖네-.
이것은 1929년12월『여성지우』에 실린 것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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