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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룽시 발급문서 발신처가 서울 … 허술한 조작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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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검찰 수사에서 위조된 것으로 드러난 유우성(34)씨의 출입국기록 관련 문건 3건 중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명의 출입국기록 발급사실 확인서의 발신처가 서울이었던 것으로 27일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지난해 11월 27일 중국 내 서로 다른 곳에서 동일한 확인서가 선양총영사관으로 팩스로 전달돼 누가, 어디서 보냈는지를 밝히는 게 수사의 핵심 중 하나였다.

 서울시 공무원간첩 증거조작 수사팀(팀장 윤갑근 검사장)은 지난 25일 인터넷 및 국제전화(팩스) 회선을 운영하는 KT송파지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같은 시각 서울 모처에서 선양총영사관 팩스번호로 흘러간 송신 내역을 확보하면서다. 수사팀은 팩스 발신이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청사에서 이뤄진 단서를 잡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발급확인서는 국정원이 발급번호조차 없는 허룽시 공안국 명의 유씨 출입국기록을 항소심 증거로 제출한 뒤 이것이 정식으로 발급받은 공문인 것처럼 꾸미려고 추가로 제출한 문건이다. 11월 27일 오전 9시20분 선양 소재 정체불명의 스팸번호에서 선양총영사관으로 1차 전송된 뒤 1시간20분 뒤 2차로 같은 문건이 허룽시 공안국 대표번호에서 들어왔다. 일반 사무용 팩스로도 발신번호는 쉽게 조작이 가능해 초기부터 위조를 의심받아 왔다.

 검찰에 따르면 발급확인서 팩스 전송 과정에는 국정원 대공수사팀 권모(51·자살 기도) 과장, 김모(48·구속) 조정관과 선양총영사관 이모(48) 영사 등이 관여했다. 이들이 사전 기획회의를 연 뒤 공문위조, 발신번호조작 팩스 발신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공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팀은 비공개 ‘블랙요원’ 신분인 김 조정관이 평소 통화내역 조회가 어려운 인터넷전화를 사용한 것에 착안해 IP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24일 대검이 발급사실 요청 공문을 선양총영사관에 보내고 팩스공문이 오간 11월 27일까지 사이에 증거조작 과정을 총괄한 본부의 권 과장, 김 조정관과 이 영사가 국제전화로 집중 통화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25일 압수수색을 통해 김 조정관 등이 인터넷전화를 사용한 장소를 찾아내고 실제 팩스 발신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수사팀은 26~27일 김 조정관과 이 영사를 재소환해 이 같은 조직적 공모 과정에 직속상관인 이모(3급·팀장) 대공수사처장 등 윗선의 승인이나 지시가 있었는지를 추궁했다. 이에 대해 김 조정관은 현재 “11월 27일 당일 사무실에 있었으나 정보기관 팩스는 수신만 될 뿐 발신이 안 된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다음주 초 김 조정관과 협조자 김모(61·구속)씨를 모해증거인멸 및 사문서위조 및 행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키로 했다. 이후 이 영사는 모해증거인멸 및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한편 간첩사건 공소유지를 담당해온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이날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중국 공문 3건을 포함해 증거물 20건을 모두 증거목록에서 철회했다. 이제까지 위조된 출입국기록에 의거해 ‘유씨가 2006년 5월 27일~6월 10일 중국 싼허세관을 통해 북한으로 다시 들어갔다’고 했던 주장을 스스로 폐기했다. 그러나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공소는 철회하지 않았다. 1심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여동생 유가려의 진술(“북한 회령 뱀골초소 인근 두만강을 도강해 밀입북했다”)이 담긴 동영상과 유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등을 증거로 추가 제출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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