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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동독 살려낸 '지멘스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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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박근혜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세계적 전기전자기업인 지멘스의 베를린 공장을 방문, 투자증진 등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드레스덴으로 이동한 박 대통령은 28일 드레스덴공대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상을 담은 연설을 할 예정이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현지 기업을 방문하는 건 이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박 대통령이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지멘스를 택한 것은 단순히 경제협력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음 행선지가 드레스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847년 창립한 뒤 가전·에너지·정보기술(IT)·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하며 독일의 대표 기업이 된 지멘스는 통일 후 동·서독의 경제통합과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독 기업 11곳을 인수합병(M&A)하고 12곳에 인력센터를 세워 구동독 노동자 2만 명을 고용했다. 특히 반도체공장을 지은 드레스덴에만 약 27억 마르크, 한화로 1조4000억원을 투자했다.

 박 대통령도 이날 한·독 경제인 간담회에서 “독일 통일 이후 구 동·서독 지역의 실질적 경제통합 과정에서 기업인들의 다양한 경제협력이 크게 기여했다고 들었다”며 “지멘스는 구 동독지역 인력을 고용해 동·서독 간 실질적인 경제통합에 기여한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이번 기회에 한국 기업들이 많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독일무역투자기구의 프랑크 로바쉭 대표도 동·서독의 경제통합 과정에 지멘스 등 기업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독일의 피렌체로 불렸던 드레스덴은 이제 독일의 실리콘 밸리로 유명하다”며 “이 같은 배경에는 서독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멘스는 단순히 기업만 세운 것이 아니라 동독인들을 교육시켜 단순 노동이 아니라 IT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에 고용했다”며 “북한과 경제협력을 할 때 하나의 사례로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 개발과 협력을 위한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면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이란 걸 지멘스 공장 방문을 통해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란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동·서독의 통합 과정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에 대해 경청했다.

 50년 전인 1964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베를린의 지멘스 공장을 방문한 인연이 있다. 이곳에서 큰 인상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방독록’에 지멘스 공장 방문기를 2000자 분량으로 상세히 남겼다. 박 전 대통령은 지멘스가 19세기 초 제작한 전화기를 보고 “우리 조상들은 그때 무엇을 했는가? 조선 말엽 관리들은 양민의 수탈에 혈안이 되고, 공직기강이 극도로 떨어졌다. 사정이 이러하니,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며 아쉬워했다. 또 “지멘스 본사는 (2차대전 후) 베를린을 복구하는 데 그들이 솔선해서 협력했다는 것을 자랑했다”며 “조국이 있어야 회사가 있고, 민족이 있어야 회사도 필요하지 않으냐고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기업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귀국 후 전기전자·철강 등 중공업 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수출주도형 경제로 전환시키는 등 독일 경제를 본떠 한국 경제의 청사진을 구상하고 집행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도 이번 지멘스 방문을 통해 향후 통일 준비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베를린=신용호,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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