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떼와 어울려 자는 「캘커타」의 노숙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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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도는 12월부터 3월까지 비가 오지 않는 좋은 관광「시즌」이다. 호텔은 만원이라고 하지만 다행히 값싼 숙소에 들 수 있었다. 실은 나의 여행이 침식에 있어서는 구걸여행인 셈이어서 되도록 얻어먹기가 일쑤다. 12년 전에 이 「캘커타」에서 사귄 옛친구들을 찾으려고 했지만 너무 밤이 늦어 할 수 없이 가장 값싼 여인숙집을 찾은 것이다.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낮선 손님이 왔다고 그러는지 채 밝기도 전에 까마귀들이 까까하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절로 눈이 떠졌다. 하긴「에디슨」이나 「나폴레옹」은 못 되지만 하루에 너댓 시간 밖에 자지 않는 것을 「모토」로 해오던 터이며 특히 여행 때는 되도록 잠을 자기보다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싶어 밖이 밝기가 무섭게 시내관광에 나서게 마련이다.
낮은 덥지만 밤과 이른 아침은 기온이 내려가는지 길가에서 침구도 없이 자던 노숙족과 걸인들은 움츠리고 드러누워 있었다. 어떤 곳엔 많은 소들과 어울려 길가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 나라는 소를 하늘처럼 받드는 성우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소들이 사람들과 함께 도시에서 사는 것이다.
캘커타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점에서는 이 나라의 첫째가는 도시다. 우선 시민만 하더라도 갈색 살갗에서 흑색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종족들이 산다. 여자들은 넓고 긴 천으로 몸을 감는 「사리」를 입지만 남자들은 깃이 없는 「샤쓰」에다가 아랫도리는 거의 「도티」(백의)를 입는다.
12년 전 이 나라를 두루 돌아다닐 때엔 사진을 찍다가 민중들에게 뭇매를 맞을 뻔도 했었다.
그 때는 중공과의 국경분쟁 때여서 나를 중공의 「스파이」인줄 잘못 알고 그랬었지만 이젠 중공과의 적대감정이 얼마만큼 사라졌을 것 같았다. 마침 아름다운 「사리」를 걸친 여자가 지나가기에 마음놓고 사진을 찍을 양으로 「카메라」를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을 찍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가로족이며 걸인들이 그 가무잡잡한 손들을 내밀면서 『박시시(적선해 주십시오?)』를 연발한다.
여유가 없는 여행이라 한두 푼이라도 이들에게 들려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으나 치근치근하게 그 구걸의 손들을 더 길게 뻗친다.
그 바람에 그만 사진 찍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어떤 미국여성은 이 나라 여자를 사진 찍다가 뭇매를 맞고 죽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 터에 섣불리 찍을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다가 이 구걸족들을 피하고자 총총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기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외국여행인인줄 알고 『박시시』하며 달려드니 말이다. 여행자에게 정말 성가신 것은 이들의 구걸행각이었다.
「캘커타」는 이 나라에서도 몇 째 안에 드는 공업도시이며 금융의 중심지인데 어째서 이렇게 빈궁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집도 없이 길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몇 만명이 될지도 모른다.
실업자는 많고 먹을 것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가 보다. 고대엔 훌륭한 종교와 철학을 비롯하여 수학의 「영」을 발견한 지혜로운 인도인의 후예가 지금 이렇게 비참하니 이 웬 인과응보인가. 서구철학을 버리고 인도철학을 받든 「쇼펜하워」가 만일 현재의 모습을 본다면 환멸을 느낄지도 모른다. 전쟁이 비참한 것이 아니라 빈곤으로 말미암은 헐벗고 굶주림이야말로 현대에 있어서는 최대의 비극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느꼈다.
지금 이 나라는 원자력산업을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텔리비젼」을 비롯한 「제트」전투기들을 생산한다지만 서민들은 원시적인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5억 이상의 인구 중 몇 백만도 안 되는 상류생활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가난한데 그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크게 보면 우선 산업의 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식민지 때의 유습이 남아있는 것, 그리고 문맹율이 70%가 될 만큼 민도가 낮은 것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때 「네루」는 인도가 가난한 원인을 들면서 『영국의 산업혁명은 「캘커타」의 피와 황금으로 가능했다』고까지 말했었지만, 내 생각으로는 「힌두」교만을 광신하는 현실도피적인 이들의 전통적인 사상이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가 「토인비」는 인도는 빈곤하기 때문에 공산화할 것이라고 예언한 일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처참한 생활을 하는 수많은 국민들도 사상보다는 종교의식이 더 뿌리깊이 박혀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나라가 지금 이같이 빈곤하면서도 큰 범죄들이 없는 것은 종교·이성을 지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일 구미사람들의 기질이라면 빈곤의 괴로움을 이렇게 무저항주의로써 참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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