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은퇴 팁] 노후의 비자금은 남녀 모두 필요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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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서명수

세상살이엔 예기치 않게 돈 쓸 일이 적지 않게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자금이란 것을 만든다. 비자금은 부정적 이미지가 떠올려지는 게 사실이지만 효용성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말하자면 필요악이다.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 2월 직장인 528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6.5%가 비자금을 만든 적이 있으며 91.7%는 비자금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비자금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비자금은 돈이 없을수록 아쉬워진다. 소득이 확 줄어드는 노후가 더욱 그렇다. 관계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 특유의 분위기상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밥값·술값·교통비·경조사비 등을 용돈으로 조달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현역 때와 달리 우연한 공돈이 생길 일이 거의 없는데, 배우자 몰래 소비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월급쟁이들은 대개 퇴직하면 가정의 경제권이 부인에게 넘어간다. 용돈을 올려달라고 했다간 배우자와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이럴 때 모아 둔 비자금이 있으면 품위도 지키면서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노후에 비자금이 필요한 건 여성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3~4년 더 오래 산다. 혼자 살아야 하는 기간이 더 긴 만큼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꼭 독거생활 대비용이 아니라도 비자금이 있으면 남편과 자식, 주변으로부터 당당해질 수 있다. 남편들도 아내가 비자금 통장을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하지만 여성은 비자금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남편이나 자식이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풀어놓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유전적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이 품위유지와 여가, 자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비자금을 썼듯이 여성도 자신의 윤택한 노후를 위해 활용하는 것은 권장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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