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경내의 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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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불교의 최고지도자인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이서옹 스님이 칼과 몽둥이 등 흉기를 든 30여명의 폭도들에게 피습되었다.
이 종정과 함께 박기종 총무원장 등 조계종 집행부의 중요간부 17명도 폭도들에게 피습·감금·사형을 끝에 입원중이라고 한다.
폭도들은 얼마 전 조계종에서 승 적을 박탈당한 전직승려가 조직한 자칭 「불교정화대책위원회」의 행동대원들로 알려졌다.
보도에 의하면 폭도들은 『이종정이 새 집행부를 구성한 뒤에도 불교계의 고질적인 부조리가 뿌리뽑히지 않아 실력행사를 통해 종 권을 탈취하고자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든 신성한 사찰경내를 피로 얼룩지게 한 이 유혈난동 사태는 조용한 세모를 고대하고 실천하려던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의 진상이 어떤 것이건 간에 「종권」을 취하고 부정을 일소한다는 주장아래 자행된 이 무법적인 폭력에 대해 국민은 끓어오르는 공분을 금치 못할 것이다.
흉기를 들고 작당하여 집단의 힘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하고, 야만스런 폭력으로 인권을 유린하는가하면 적법한 사회조직을 무시하고 이를 파괴하려고 드는 발상과 행동이 종교단체 안에서까지 난무하고있는데 대해 망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는 터무니없는 폭력숭배의 망상을 언제부터 씨뿌리고 길들여 왔다는 말인가.
더우기 난동의 주모자는 한때나마 불교의 승려였으며, 현재도 소위 「불교정화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불교정화」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이 아닌가.
난동의 무대가 우리 불교의 총본산 격인 조계종의 총무원이었다는 점에서도 국민의 경악과 분노는 크다..
종교계, 특히 불교계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망은 그동안 종단내의 추악한 파쟁으로 수 없이 좌절되고 훼손되어왔다. 해방 후 비구·대처의 싸움으로 발단한 정화에의 몸부림은 지난30년 간 어느 정도 결실을 보는 가도 했었지만, 여전히 종권과 재산처분을 둘러싼 잡음과 일부 승려들의 파계행각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통탄할 일이다.
특히 올해엔 이서옹 종정과 손경산 총무원장 사이의 종권 싸움으로 한때 사회가 떠들썩 했으며, 종단부정에 관련된 전 간부승려들이 재판에 계류되고 있는 형편이다.
승단 안에는 과거 정화불사에 편승하여 비구의 대열에 끼어 들었던 시정잡배들도 적지 않다고 들린다. 물론 우리의 승려들 중에는 불문에 들어와 경건히 부처님께 귀의하고 계율을 열심히 지켜 올바른 수행에 정진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개중에는 아직도 이욕에 사로잡혀 불보를 욕되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가끔 종단 내에서 분쟁을 일삼고 있음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도 이런 유의 준동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 만큼 이 사건은 정화불사가 제2단계로 들어가는 시발점이 되어야하겠으며, 불교계의 기풍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불교계의 부조리가 극에 이르러 이 같은 난동사태가 발생했다면 이를 계기로 종단의 숙정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은 불조가 가르친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1천6백년의 역사전통 가운데 자라온 한국불교는 민족과 사회흥망에 부응하는 유신의 시대를 열 각오에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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