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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사활을 걸고, 어깨를 겯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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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6·4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 후보들이 승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날 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새 정치는 이제 내가 하겠다” “진정한 새 정치는 말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어깨를 걸고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다” 등의 공방을 벌이는가 하면 “정치생명을 걸고 결단한 것이다” “당의 사활을 걸고 임한다는 각오다” 등 저마다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운명뿐 아니라 엄청난 지각 변동을 몰고 올 수 있는 선거이다 보니 정치인들도 “정치생명을 걸고” “당의 사활을 걸고” 등처럼 ‘∼을 걸고’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때의 ‘걸다’는 목숨·명예 따위를 담보로 삼거나 희생할 각오를 한다는 뜻이다. “내 양심을 걸고 하는 말이니 믿어 달라” “그는 자신의 직위를 걸고 부하 직원을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나섰다”와 같이 쓰인다.

 “정치생명을 걸고” “당의 사활을 걸고”와 달리 “국민과 함께 어깨를 걸고”는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 “국민과 함께 어깨를 겯고”로 바루어야 한다. 같은 목적을 위해 행동을 서로 같이하다, 어깨를 나란히 대고 상대의 어깨에 서로 손을 올려놓다는 의미의 말은 ‘어깨를 걸고’가 아니라 ‘어깨를 겯고’이다. ‘겯다’는 풀어지거나 자빠지지 않도록 서로 어긋매끼게 끼거나 걸치다는 뜻으로 ‘겯고, 겯거나, 겯는, 결어서, 결으니’ 등처럼 활용된다. “거창한 공약보단 시민과 어깨를 겯고 이인삼각으로 동행하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어깨를 겯거나 손을 맞잡아 봐라” “혼자서는 비바람을 견딜 수 없지만 어깨를 겯고 함께 선다면 능히 견딜 수 있다”와 같이 사용한다.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를 걸고 나가자” “나아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 등처럼 ‘어깨를 걸고’란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일부 사전에서는 이를 반영해 관용구로 싣기도 했으나 어법상 ‘어깨를 겯고’가 올바른 표현이다. ‘걸다’는 벽이나 못 등에 어떤 물체가 떨어지지 않도록 매달아 올려놓다, 자물쇠를 채우거나 빗장을 지르다는 의미이므로 ‘어깨를 걸고’라고 하면 어색한 표현이 된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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