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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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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박승희 기자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국장
박승희
워싱턴총국장

지도자는 고독하다. 결정하는 자리라서 그렇다. 회식을 앞둔 상사가 무얼 먹을지 정해보라고 할 때 직장인들은 갑자기 고독해진다.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다. 매 순간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파급력이 큰 일에 대해 결정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을 세계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으로 꼽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지난 일요일 NBC 방송에 출연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표출한 불만은 곱씹어볼 만하다.

 - 오바마가 당신에게 조언을 구한 적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노’다. 솔직히 그가 왜 지금껏 내게 조언을 구하는 전화 한 통 걸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중동문제에 관해 나와 견해가 달라서일까….”

 - 다른 대통령들은 조언을 구한 일이 있는가.

 “물론이다. 부시 대통령 부자도, 클린턴 대통령도, 심지어 레이건 대통령까지도 현직 시절 내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곤 했다.”

 카터의 나이는 올해 90세다. 재임 중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퇴임 후 평화운동과 활발한 사회사업으로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반열에 올랐다. 생존하는 미국 민주당 원로그룹 중 최고참이다. 하지만 아들뻘인 대통령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할 때 그의 표정은 슬펐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요즘 오바마 대통령은 유난히 고독해 보인다. 6년 전 그를 향해 쏟아지던 세계인들의 환호와 찬사는 사라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라이벌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당한 뒤에는 2012년 대선 패배자인 밋 롬니 전 공화당 후보조차 “그럴 줄 알았다”고 조롱하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서 문제를 진단하는 소리는 무성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얘기다. 그의 2007년 선거운동을 도왔던 한 인사는 “정작 중요할 때 오바마는 주변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는다. 경륜이 풍부한 멘토가 없는 게 약점”이라고 귀띔했다.

 공교롭게도 1기 때와 달리 오바마 행정부 2기에는 국정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 확 줄었다. 백악관에서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49), 핵심 실세인 벤 로즈 국가안보부보좌관(37) 등 주요 참모들은 대부분 30, 40대다. 백악관 안은 지금 이너서클 출신들로 북적거린다. 대통령과 함께 지낸 인연들이 깊은 인물들이다. 그런 만큼 귀에 거슬리지 않는 조언을 하는 데 익숙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독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전화 한 통화 걸지 않는다”는 카터 전 대통령의 불만을 미국 언론들이 주목하는 건 그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한국의 원로 정치인들은 “청와대 안가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게 하면 위험하니 바깥 사람들과의 접촉을 강제로라도 늘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통령이 고독하다는 건 국정 운영의 위험신호다.

박승희 워싱턴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