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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리 넘보는 덴마크 총리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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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부부가 모두 정치인일 순 있다. 미국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과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처럼 말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나라에서 정치를, 그것도 지도자의 반열까지 오른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유럽에선 그러나 그런 부부가 막 나올 참이다.

 덴마크의 첫 여성 총리인 헬레 토르닝슈미트 총리의 남편인 스티븐 키녹이 22일(현지시간) 내년 영국 총선에서 남웨일스의 아베러본에 나설 노동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아베러본은 1922년 이래 내리 노동당 후보가 당선된 곳이다. 키녹의 의회 입성은 떼놓은 당상이란 얘기다.

 그의 공천이 주목받는 건 그가 덴마크 총리의 남편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는 이른바 ‘레드 프린스’로 불리는, 영국 노동당 유력자 가문 출신이다. 스스로 “할아버지가 광산노동자로, 난 여느 누구처럼 노동자계급 출신이며 15세 때부터 노동당 당원이었다. 내 피엔 정치가 흐른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 출신 배경만 보면 키녹이 토르닝슈미트보다 훨씬 더 정치적이다. 토르닝슈미트는 경제학 교수의 딸로 스스로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인이 된 경우다. 반면 키녹의 부모는 모두 하원의원을 지냈고 현재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아버지 닐 키녹은 83년부터 92년까지 노동당 당수였다.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 총리 때로, 영국 역사상 최장수 야당 당수이기도 하다. 어머니 글레니스 키녹은 15년간 유럽의회 의원이었고 영국에서도 장관을 지냈다. 스티븐 키녹 자신은 그동안 정치와 거리를 둬왔다. 영국문화원 소속으로 러시아·시에라리온 등에서 일했고 세계경제포럼(WEF)의 유럽과 중앙아시아 책임자를 지냈다. 토르닝슈미트가 총리가 된 2011년 이후엔 주로 런던에 머물렀다. “나만의 경력을 쌓는 게 중요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정계 입문을 결정하면서 타국 총리를 부인으로 둔 하원의원이 나오게 됐다. 영국서도 이런 상황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영국 가디언지가 농반진반 문답 형태의 보도를 했다.

 -스티븐 키녹이 선출직으로 일한 경험이 있나.

 “닐 키녹의 아들이다.”

 -다시 묻는다. 선출직 경험이 있나.

 “어머니는 글레니스이고 부인은 덴마크 총리인 헬레 토르닝슈미트다.”

 -만일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고 그가 현재 노동당 당수인 에드 밀리밴드 대신 총리가 된다면 영국 총리가 덴마크 총리와 결혼한 셈이 되나.

 “영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덴마크의 ‘퍼스트 맨’과 결혼했다고 표현하는 게 낫겠다.”

 실현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니다. 닐 키녹의 노동당 내 위상 때문이다. 2010년 현 노동당 당수인 에드 밀리밴드가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를 제치고 당권을 장악할 때 닐 키녹의 열렬한 지지가 큰 도움이 됐었다.

 한편 토르닝슈미트 총리도 남편의 결정이 이례적이란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기자들에게 “우린 여러모로 흔치 않은 삶을 살아왔고 잘 지내왔다. 단언컨대 이번에도 잘해낼 것이다. 너무 걱정들 마시라”라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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