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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레이크사이드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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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총 441계좌의 회원이 모집된 레이크사이드 서코스 11번 홀의 코스 전경. [사진 레이크사이드]

올 들어 국내 골프업계 최대 화제는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이 새 주인을 찾았다는 뉴스다.

 최근 10년간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아왔던 경기도 용인의 레이크사이드(54홀·회원제 18홀 포함) 골프장은 지난 14일 3500억원에 삼성 품에 안겼다. 삼성물산과 삼성에버랜드(지분비율 8대 2)가 인수 주체다. 스카이72골프클럽(72홀)에 이어 수도권에서 둘째로 큰 레이크사이드의 매각은 골프업계는 물론 일반 골퍼에게도 메가톤급 이슈가 됐다. 회원권이 없는 골퍼들에게 이곳은 마치 ‘지구의 폐’인 아마존처럼 여겨져 왔던 까닭이다.

 통상 대기업이 특정 시장에 뛰어들면 경계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번 경우엔 골프장 업계가 하나같이 “환영한다”고 반색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골프장 사업이 그만큼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골프장 500개 시대를 맞았지만 50여 개가 매물로 나와 있고 100여 군데는 수익성이 떨어져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황금알 낳는 거위에서 사양 산업 된 골프장

 1980년 후반에서 90년 중반까지 골프장 사업은 금광으로 비유될 정도로 고수익 사업이었다. 투자된 모든 비용 100%를 회원 모집을 통해 전액 회수할 수 있었다. 투자비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수백억 이상의 재산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은 당시 골프장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아무나 뛰어들 수 없는 ‘특수산업’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무렵엔 골프장을 승인받으려는 기업과 개인 사업자들이 청와대에서부터 광화문 사거리까지 줄을 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지금 골프장 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찬바람이 쌩쌩 분다.

 회원제로 승인받았지만 아예 사업계획을 반납한 곳도 있다. 회원이 모집되지 않아 퍼블릭 골프장으로 전환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에이스회원권㈜의 송용권 이사는 “삼성의 등장은 큰 호재다. 골프장 사업이 부실화되고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굴지의 국내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변곡점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 탄생부터 매각 때까지 화제를 뿌려온 골프장

 레이크사이드는 규모 못지않게 경영권 분쟁 등으로 가장 자주 골퍼들 입에 오르내린 골프장이기도 하다. 국내 첫 18홀 이상 정규 퍼블릭 골프장의 효시인 레이크사이드는 재일동포 사업가인 고 윤익성(1996년 작고) 회장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갖은 고생 끝에 부동산 사업 등으로 자수성가한 윤 회장은 5공화국 때 막차를 탔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는 새해를 이틀 앞둔 87년 12월 29일 사업 승인을 받았다.

 교통부 장관이 승인하도록 돼 있었지만 사실상 청와대 내인가제 시절이었다.

 주변 인물들의 전언에 따르면 윤 회장이 골프장 사업에 뛰어든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는 회원권 없이도 누구나 골프를 즐길 수 있는 퍼블릭 골프장을 한국에 만드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슬하에 둔 6남매가 배곯지 않고 살도록 고국에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더스타휴 골프장의 조한창 회장은 “윤 회장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 얼굴이 마치 농부 같았다.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손에 굳은살투성이였다. 그는 항상 자식들이 덜 고생하면서 살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자식들에게 ‘현금’보다 ‘텃밭’을 일궈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회원제 골프장으로 승인받으면 18홀당 700명 이상~1800명 이내로 회원을 모집할 수 있었다. 36홀이면 3600명이나 된다. 90년대 초반 개인 회원권 값이 1900만~5000만원 안팎이었음을 감안할 때 3000만원대 분양이 가능했다. 약 1080억원 규모의 현금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윤 회장은 89년 12월 기어코 회원제 18홀을 추가로 승인받았다. 퍼블릭 36홀은 88년 2월에 착공해 90년 10월에 등록 개장했고, 회원제 18홀은 97년 9월에야 오픈했다. 총 54홀의 부지면적은 419만8347㎡(약 127만 평)였다. 하지만 윤 회장은 완결된 자신의 ‘골프왕국’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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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텃밭을 갈아엎은 경영권 분쟁

 서울 만남의 광장에서 23㎞ 거리에 회원권 없이도 골프를 칠 수 있는 레이크사이드가 개장하자 골퍼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문턱이 높았던 회원제 골프장의 주말부킹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시절이다. 한마디로 비회원 골퍼들의 해방구였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분당의 태재 고개를 넘어가는 고급 승용차가 줄을 이었다.

 회원제 서코스 18홀이 개장하자 회원권은 금세 동이 났다. 개인(1계좌·1차 모집 1억8000만원, 2차 모집 2억3000만원)과 법인 회원권(2인 1계좌·1차 모집 3억6000만원, 2차 모집 4억6000만원) 등 441계좌(개인 91계좌 포함)가 팔려 나갔다. 순식간에 한국 골프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지난 23년 동안 이 골프장을 이용한 골퍼는 최소 530만~560만 명에 달한다.

 거품이 낀 평가 금액이지만 한때 이 골프장의 가치는 9000억~1조원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영업 이익은 157억원이었다. 그러나 수도권 최대 규모의 레이크사이드는 창업주가 작고한 이후 가족·형제 간의 진흙탕 경영권 다툼으로 번졌다. 2002년 법원이 강제 조정한 지분 비율은 윤맹철(차남) 36.5%, 김어고(고 윤익성 회장의 일본인 처) 20%, 윤광자(장녀) 14.5%, 윤대일(3남) 14.5%, 석진순(장남 고 윤맹진의 처) 및 윤용훈(손자) 14.5%다. 이 지분은 또다시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거쳐 유족 간에 비수가 됐다. 장기간의 경영권 분쟁과 경기침체 등의 이유로 가치는 급락했다.

 # 삼성, 6개 골프장서 총 162홀로 업계 1위

 골프업계에선 삼성이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는 평이 중론이다. 조한창 회장은 “어느 기업이 선뜻 그 많은 돈을 투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삼성은 레이크사이드 인수로 안양(18홀)과 가평베네스트(27홀), 안성베네스트(36홀), 글렌로스(9홀·이상 에버랜드), 그리고 동래베네스트(18홀·삼성물산) 등 6개 골프장에서 총 162홀을 보유, 국내 최다홀 골프장을 거느리게 됐다. 그동안 국내 골프장 규모 1위인 신안그룹(153홀)을 제쳤다.

 하지만 삼성이 의지대로 골프장을 인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이 직접 골프장을 건설한 것은 68년에 개장한 안양 골프장과 99년에 에버랜드에 조성한 9홀의 글렌로스 등 2곳뿐이다. 동래베네스트는 71년 신진자동차 김창원 회장이 건설했지만 모기업의 부도로 78년 삼성이 떠안았다.

 90년 1월 8일 나란히 승인받았던 안성베네스트(옛 나다 골프장)와 가평베네스트(옛 이글스네스트 골프장)도 사실상 부도난 골프장을 넘겨받은 것이다. 골프장 경영 전문업체인 GMI 안용태(전 안양 골프장 지배인) 회장은 “안성은 모영조 회장이 자금 조달이 안 돼 회원과의 개장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삼성에 위탁 경영을 맡겼다가 매각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안 회장은 “공교롭게도 삼성은 국내 골프클럽 업계가 어려울 때 뛰어들었다”고 했다.

 삼성에 인수돼도 당분간 실질적인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회원권의 안전성이 더 강화되고 불안감이 해소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면 변화다. 삼성에버랜드 관계자는 “골프장 인수 이후 에버랜드와 연계한 여러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가 많다. 그러나 어떤 계획도 세운 바가 없다. 잘못된 정보로 시장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삼성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삼성은 레이크사이드에 베네스트(Benest·최고를 나타내는 Best와 둥지를 나타내는 Nest의 합성어)라는 브랜드 명칭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삼성 에버랜드 측은 “독립적인 운영체제로 갈 것이다. 레이크사이드라는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골프장의 인력과 조직 체계도 그대로 가져간다는 방침이다. 운영 원칙은 퍼블릭 골프장으로서 ‘공정성’을 더 견고하게 지켜나가겠다는 것이 삼성 측의 입장이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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