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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 노환규' 회장이 '국민 무대뽀'로 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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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

노환규 의사협회 회장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무대뽀’ ‘좌파’ 등등. 서울대병원 한 전공의는 “전공의 사이에 ‘노빠(노환규 회장 추종자)’가 많다. 의료계의 현실을 직설화법으로 긁어준다”고 말한다. 의대생들도 94%의 지지를 보낸다. 단국대 의대 박형욱 교수는 의료 전문 사이트 칼럼에서 노 회장을 ‘무대뽀(무조건 밀어붙이는 스타일)’ ‘비상식적’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정부와의 협상 결과를 뒤엎은 일을 빗댔다. 그래도 박 교수는 ‘상식적’이던 종전 회장과 달리 노 회장의 그런 스타일이 있었기에 건강보험 문제점 공론화가 가능했다고 높이 평가한다.

 노 회장을 좌파라고 비판하는 측은 그가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며 진보세력과 손을 잡은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동안 의협은 의료민영화를 주장해왔다. 병원이 무조건 건강보험 환자를 봐야 하는 당연지정제가 위헌이라며 두 차례 헌법소원을 냈고, 노 회장도 그중 한 차례를 담당했다. 그런 의협이 지금은 의료 영리화(처음에는 민영화라고 표현했음) 반대를 외치고 있으니 앞뒤가 안 맞는다.

 노 회장의 ‘좌 클릭 전략’은 지금까지는 성공이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때 의협의 집단휴진을 맹비난하던 참여연대나 민주당이 이번에는 우군이 됐다. 진보세력이 집단휴진을 지지한 게 이해가 안 되지만, 어쨌거나 노 회장은 힘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동거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의사 집단행동의 귀착점은 수가 인상인데, 진보세력은 여기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노 회장은 2012년 회장 취임 때부터 “원가의 70%에 불과하다”며 ‘저수가 구조’를 공격해왔다. 그를 좌파로 비판하는 의사도, 전공의도 적극 동조한다. 전공의들은 ‘전문의 취득=행복 시작’을 기대하며 주당 100시간 근무를 견딘다. 그러나 요즘에는 동네의원이 어려워지면서 불안을 느낀다. 노 회장이 이들의 기대치를 얼마나 채워줄지는 의문이다. 그는 2012년 페이스북에서 “돈 얘기 당당하게 하자”며 “전문의 연봉이 9200만원이다. 월 760만원이 안 된다”고 탄식했다. 하지만 이런 자료도 있다. 2010년 동네의원 한 곳당 평균순익은 1억3000만원이다(의협 정책연구소 자료). 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건보진료비는 원가의 95%이지만 비보험 진료를 포함하면 110%다.

 의사는 의대 6년, 전공의 4~5년을 투자한다. 생명을 다루는 업(業)의 특성을 고려하면 월급쟁이보다 보상이 많아야 하는 것은 맞다. 선진국도 많다. 얼마나 더 많아야 할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계도 주변을 살필 필요가 있다. 공인회계사·변호사 등의 전문직도 예전보다 못하다. 일반 대졸자의 미래 불안은 상상 이상이다. 어학연수, 자격증 취득 등 스펙 투자 비용도 상당하다. 서울 강남의 한 중소병원장은 “월 1500만~1800만원(세후 기준)을 보장해도 의사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말한다. 지방의 한 경영자는 “연 2억 5000만~3억원에도 의사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노 회장 뜻대로 건보 수가를 올리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 구성이 의료계에 유리해진다고 다 풀릴까. 2000년 의약분업 파업 전후에 수가가 50%가량 올랐다가 그 이후 줄줄이 동결·삭감되는 역풍을 맞았다. 근본 처방은 동네의원 역할 찾기다. 지금처럼 대구의 의원과 서울아산병원이 경쟁하는 구도는 비정상이다. 동네의원이 대당 10억원 넘는 양성자 단층촬영장치(PET-CT)를 200대 이상 갖고 있는 나라는 없다.

동네의원의 장점은 ‘동네’에 있다. 지역사회에 뿌리박고, ‘우리 가족 지킴이’가 돼야 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3년 한국 사회통합 보고서). 1차 건강 문지기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몇 년 뒤 또 집단휴진 타령을 할지도 모른다. 이를 위해 진료과목 간 이해관계 조정, 전문의 축소 및 양성비용 국가 지원 확대, 만성질환 예방 강화 등 얽히고설킨 퍼즐과 싸워야 한다. 노 회장이 할 일은 2000년 이후 누적된 의료 왜곡의 처방전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노빠의 힘’을 쏟아야 박수 받는 ‘무대뽀’가 될 것이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