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엄성은 회복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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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대화위주」도 한 원인>
기억도 하고싶지 않은 최근의 김대두 외딴집연쇄살인사건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와 같이 여긴 오늘의 인명경시풍조를 또 한번 대표한 몸서리치는 사건이었다.
더우기 현장검증에서 보여준 그의 후안무치한 태도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신문사 톱면을 장식하는 어린이 유괴사건·살인강도사건·뺑소니차사건 등을 볼 때 분노에 앞서 과연 이런 사건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는 반성을 금할 수 없다.
나는 한사람의 전도자라는 입장에서 범인들을 탓하기 전에 바른 선교를 못했다는 깊은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다시 말해 생명을 중시하고 인간의 정도를 이끌어 나아가야 할 교회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거듭 뼈저리게 느낀다.

<망각되어가는 「인간교육」>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는 배경에 엄격한 비판을 가해보자면 그 원인의 하나로 우리가 오늘날 그처럼 신봉하는 「근대화」에도 책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지상과 건설을 위주로 하는 근대화의 기치아래 지도층이 이같은 목적을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존엄성을 다소 경시한데서 유래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성을 바로잡고 인간 본연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인식하에 근래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도 많이 설치됐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교육은 교육부재라는 말과 함께 하나의 사업장이 돼버린 채 인간교육은 거의 망각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으로 생명을 바꾸리>
특히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통의 학교들마저도 예외가 아니다. 이 같은 현실은 인간의 구원을 그처럼 부르짖는 기독교자체도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음을 충분히 반증해준다.
예수는 『사람이 무엇을 주고 그 생명을 바꾸겠느냐. 온 천하를 얻고 그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마태복음 16장)고 말했다.
생명의 귀중성을 이렇게 말한 예수는 끝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수하며 인간을 생명에의 길로 인도하려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신봉자를 비롯한 모든 종교인들부터가 과연 생명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종교 본연의 정신을 얼마나 체득 실천하고 있는가를 깊이 반성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오늘의 생명경시풍조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기보다는 한사람의 목사라는 입장에서 나 스스로가 반성하고 회개하고싶을 뿐이다.

<「인간」없인 모두 사상누각>
다만 이 같은 그릇된 풍조를 바로 돌리는데는 위정자를 비롯한 기업인·각계 지도층인사·교육자·교회 등 모두의 힘이 합해지지 않고는 어렵다는 생각에서 약간의 비판을 해본 것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시급한 일의 하나는 발전과 건설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본연의 자세를 되찾아 상실된 인간성과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산업발전도, 억만장자의 부귀영화도 「인간」이 없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허무한 사상누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강신명(새문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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