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내외정책에 변화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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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미·소간에 체결된 장기곡물거래협정은 소련의 대내외정책의 장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조치라고 「모스크바」의 서방전문가들이 보고있다.
대외적으로 볼 때 이 곡물협정은 서방의 많은 인사들이 가장 확고한 평화기반이 된다고 주창해 온 조약에 토대를 두고 자본주의세계와 공산주의세계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지향하는 첫 소련측 조치가 되고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이 곡물거래협정은 세계에 모범이라고 다년간 제시되었던 국가가 운영하는 소련농업이 적어도 앞으로 수년간은 소련국민을 먹여살릴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이같은 시인은 소련의 지도층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일 「워싱턴」에서 발표된 미·소 곡물협정은 내년 10월부터 발효하며 이 협정에 따라 5년 동안 소련은 그들의 곡물수확이 아무리 좋더라도 해마다 적어도 6백만t의 미국소맥과 옥수수를 구입하기로 되어있다. 그 대신 소련은 1년에 약1천만t의 석유를 미국에 판매하기로 다짐했다.
이 곡물협정은 소련이 작년의 세계식량회의 때처럼 소련농업을 세계식량생산과 연관짓기를 꾸준히 거부해온데 비추어 세계식량공급문제에 대한 소련태도가 크게 변했음을 뜻한다.
세계식량회의 때만 해도 소련은 1억9천6백만t이라는 만족스러운 곡물수확을 올렸고 75년에도 풍작이 될 것으로 예상하여 세계식량공급문제에 초연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았던 올 여름의 한발로 올해의 곡물생산이 목표 2억1천5백만t에서 4천5백만t이나 미달하여 불과 4년 동안에 두 번째의 곡물흉작을 맞았다.
이 같은 흉작은 「레오니드·브레즈네프」공산당서기장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소련의 10개년 농업현대화계획과 농업부문에 대한 전례 없는 투자증가에도 불구하고 초래되었다. 이러한 곡물흉작과 미·소 장기곡물협정 체결이 소련국내에 미칠 수 있는 한가지 영향으로 내년 2월에 있을 당대회때 「브레즈네프」의 지위약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곳의 일부 서방 「업저버」들은 생각하고 있다.
73년에 2억2천2백50만t이라는 곡물대풍작이 있자 당서기장 취임후의 극적인 농업생산증가는 모두 「브레즈네프」때문이라고 생각되어왔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는 어쩔 수 없이 미묘한 입장에 처하고 있다고 「업저버」들은 말하고 있다.
올해의 흉작과 대미곡물협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든간에 뚜렷했던 한가지 사실은 「크렘린」이 대미곡물협정이 아주 절실히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이곳의 정통한 소식통들에 의하면 오랜 시일을 끌었던 미·소 곡물협정협상에 있어 온갖 조치가 『소련최고위층』에서 토의되었다고 하며 이것은 당정치국이 이 협상에 긴밀하게 관여했다는 것을 시사하고있다.
장기 미·소 곡물협정은 만일 미국의 곡물수확이 2억2천5백만t에 미달할 경우 그해에는 대소곡물수출약속을 이행 않을 수도 있다는 유보조항을 미국에 주고있는데 반해 소련은 풍작이든 흉작이든 연6백만t의 「코터」량을 구입해야된다고 규정하고있어 이것은 소련이 대미곡물협정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나를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협상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소련의 대미석유판매결정은 서방측의 대「아랍」 산유국 가격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염려가 있어 「크렘린」에서 난제가되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처사가 「폴리안스키」농상과 그의 상사들의 지위를 보호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폴리안스키」는 초조해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밝혔다. 그는 2주 전 연설을 통해 흉작을 시인하면서 이러한 흉작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막을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말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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