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헬리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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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선(螺旋)날개'를 스케치로 남긴 것은 1490년께다.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던 다빈치는 하늘로 말려올라가는 나선형 날개를 빠른 속도로 돌려 수직 상승하는 힘으로 인간이 창공을 날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다빈치의 스케치를 보고 실제로 나선 날개(Helicopter)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실현한 사람은 '헬리콥터의 아버지' 이고리 이바노비치 시코르스키(1889~1972)다.

그가 처음 VS-300 헬리콥터를 조종해 시승한 1939년 9월 14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2주째 되는 날이었다. 다빈치의 나선 날개 이후 약 4백50년이 지났으며, 어린 시코르스키가 다빈치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고부터 4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만약에 대비해 느슨한 밧줄로 땅에 묶인 헬리콥터는 실제로 수직 상승했다. 그러나 겨우 몇초 만에 땅으로 가라앉기를 대여섯번 반복했다. 어쨌든 나선 날개가 비상(飛翔)의 꿈을 펼쳤다. 시코르스키는 이후 38개의 특허를 내면서 개량을 거듭했다.

전후좌우와 수직으로 움직이는 탁월한 기동성은 군인들의 눈에 먼저 띄었다. 40년 7월 미국 육군 항공대는 2인승 헬리콥터를 주문했다.

시코르스키는 42년 미국이 참전하자마자 납품을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헬리콥터는 주로 환자 후송이나 정보수집과 같은 비전투 업무에 사용됐다. 헬리콥터가 기관총과 로켓으로 무장한 공격용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은 50년 한국전쟁 때부터다.

21세기 전장에서도 헬리콥터는 맹활약 중이다. 약 9백대의 연합군 헬기가 이라크 전쟁을 끌어가고 있다.

처음 국경을 넘는 전투부대 진격로를 연 주역은 공격용 아파치(Apache)며, 특수임무를 띤 병력이 적진 요소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은 수송용 시나이트(Sea Knight) 덕분이며, 걸프해역 선박과 항공기의 안전을 책임지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도 시킹(Sea King)이다.

그런 첨단 전쟁의 첨병인 헬기가 거의 매일 충돌과 피격 사고로 떨어지고 있다. "헬리콥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인명을 구하는 것"이라던 시코르스키의 정년 퇴임사가 여러모로 무색하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