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규제개혁 '끝장 토론' 제대로 끝장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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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기로 한 규제개혁장관회의가 내일로 연기되면서 민·관 합동의 대규모 행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통령과 해당 부처 장관, 민간 기업인 간 끝장 토론을 벌이는 쪽으로 형식과 내용도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수렴하겠다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최근 대통령은 규제 개혁에 강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용어도 갈수록 강하게 바뀌고 있다. 지난해 ‘손톱 밑 가시’에서 시작한 규제 개혁 용어는 한 번 물면 안 놓는 ‘진돗개 정신’을 거쳐 이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로까지 바뀌었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규제 개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들도 정권 초기에 규제 개혁을 내세웠지만 실패했다. 왜 그런가. 규제 개혁을 주로 비용과 편익이란 경제 논리로 접근했을 뿐 규제 권력을 손에 쥔 관료들의 저항과 정치권의 사적(私的) 이익을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관료 조직을 그대로 두고 추진하는 규제 개혁은 공염불이 되기 쉽다.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규제도 많다. 그런 규제들은 애초 쾌도난마식 해법이 불가능하다. 대형마트 규제는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리겠다며 만들어졌고, 수도권 규제는 지역 균형 발전을 명분 삼아 탄생했다. 국가 경제 전체를 보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나 인기영합적인 규제를 남발한 결과인데 이 같은 규제가 쌓이면 사회 곳곳에 병목이 생기고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된다. 규제 하나를 푸는 데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수십 년째 철폐를 외쳤지만 곳곳에 덩어리 규제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다.

 규제 개혁이 구두선에 그치지 않으려면 먼저 어떤 경제,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큰 틀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관료·정치권의 저항이나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 대부분 국민은 규제 개혁이란 큰 틀에는 동의하지만 대통령이 왜 그토록 규제 개혁을 강조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 방향과 청사진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토론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끝장 토론이라지만 기업인들이 대통령과 관료들을 앞에 놓고 할 수 있는 얘기는 한계가 있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수도 있고, 규제 권력인 관료들 눈치를 보느라 속내를 털어놓지 못할 수도 있다. 관료들이 대통령 앞에서만 규제 철폐를 약속하고 돌아서면 나 몰라라 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토론 후 어떻게 조치가 됐는지 끝까지 챙길 필요가 있다. 끝장 토론이 사전에 정해진 질문을 주고받는 식이어서도 곤란하다.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국민에게 가감 없이 전달돼야 규제 개혁에 대한 큰 공감대가 생길 수 있다. 그때 비로소 규제 철폐의 진짜 첫걸음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