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보다 옷에 더 관심 많은 남자 모여 노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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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이 슈 케어(구두 손질) 강연을 듣고 있다. 남성을 위한 파티인만큼 매번 남자가 좋아하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김경록 기자

“누구보다 멋진 나를 위해, 그리고 그 멋을 아는 우리를 위해!”

 지난 8일 오후 7시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23층 클럽 호라이즌에서 컬처앤라이프(Culture&Life) 파티가 열렸다. 호스트 서현보(32·라끼아베 대표)의 건배사로 파티가 시작됐다. 서 대표는 “건전한 남성 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파티”라고 이 모임의 성격을 설명했다.

 남성문화란 대체 뭘까.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옷이다. 실제 이날 참가자 50여 명 대부분 옷에 관심있는 남자들이다. 컬처앤라이프 파티는 2012년 말 서 대표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신사와 클래식’(Santuari e classica) 정기 모임에서 비롯됐다. 당시엔 클래식 정장을 좋아하는 20여 명이 친목을 도모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세번째 모임부터 초대장을 만들어 참가 신청을 받았고, 주제와 드레스 코드까지 정해 파티 형식을 제대로 갖췄다.

파티에서 가장 인기있던 네일 케어(손톱 손질) 부스.

 서 대표는 “한국에도 옷 좋아하고 멋내길 좋아하는 남자가 많은데 멋지게 빼입고 갈 만한 곳이 없어 늘 아쉬웠다”며 “건전하게 즐기는 남성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 파티를 열었다”고 말했다. 참가 비용은 10만원으로, 서씨의 블로그나 지인 소개로 참석한다. 매번 주제가 바뀌는데 이날 주제는 슈 케어였다. 관련 업체에서 나와 구두 관리법을 알려주고 참가자들 구두를 손질해줬다. 이날 인상적이었던 건 네일케어 부스다. 3명이 동시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사람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파티에 온 김대웅(28·은행원)씨는 “고객에게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며 “펜을 잡다보면 손끝에 펜 자국이 남아 지저분해보일 수 있어 평소 직접 네일케어를 한다”고 말했다.

 옷 좋아하는 사람이 모인 파티인 만큼 참가자들은 서로의 옷부터 탐색했다. 이날 드레스 코드가 ‘네이비 엘레강스’라 다들 남색 재킷이나 포인트 액세서리로 한껏 멋을 냈다. 최고령 참가자인 박치헌(60·슈트 이미지 컨설턴트)씨 주변은 내내 북적였다. 그는 먼저 나서서 “멋있는 사람끼리 사진 찍자”며 젊은 참가자들과 어울렸다.

 지금까지 열린 8번의 파티에 모두 참가한 박현서(31·회계사)씨는 “남자들이 폼나게 입고 즐기는 모임”이라고 파티를 정의했다. 그는 “업무 특성상 수트를 즐겨입지만 멋 내기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며 “남자가 옷 좋아한다고 하면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이 많아 불편한데 이곳엔 ‘옷 환자’가 많아 편하다”며 웃었다. 이승현(29·애널리스트)씨는 “파티에 간다고 하면 ‘된장남’이냐고 묻는데 실은 정반대”라며 “파티 때마다 패션업계 종사자가 알짜 정보를 주기 때문에 비싼 것도 싸게 살 수 있는 정보를 주고 받는 실속파”라고 말했다. 파티가 아니더라도 가끔 만나 함께 옷을 사러 가기도 한다. 정재희(38·금융업)씨는 “옷은 입어본 사람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여자가 골라주면 실패 확률이 높다”며 “이곳에서 만난 지인과 옷 사러 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남색 재킷과 원피스로 맞춰 입은 고주원(28)·강지희(28) 부부는 “둘 다 옷에 관심이 많아 같이 왔다”고 말했다.

 남성이 주로 참석하지만 여성도 파티에 온다. 서 대표는 “간혹 남녀 간 사교 파티로 오해하고 오는 여성 참가자가 있다”며 “남자가 자신에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옷 얘기만 해 실망하고 돌아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날 파티에서도 지루해하는 여성 참석자가 눈에 띄었다. 한 30대 여성 참가자는 “재미없다”며 연신 술잔만 비웠다.

송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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