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또는 여자에게 그의 엉덩이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운동은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할 것 같지만 40~50대 남자들의 운동 열기, 장난 아니다. 아저씨들이 해봐야 달리기 밖에 더 하겠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나이대 남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위는 엉덩이다.

전자부품 제조업체 김모 대표(49)는 요즘 일주일에 두번씩 피트니스 클럽에 가 트레이너에게 개인 지도(PT·Personal Training)를 받는다. 주로 힙업(hip-up)을 해주는 하체운동이다. 얼마 전 골프 치러 갔다가 충격을 받은 후다.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에 들어갔더니 같이 간 업계 관계자가 김 대표 엉덩이에 은밀한 시선을 꽂더니 “요즘 운동 안 하나봐”라고 슬쩍 말한 거다. 뒤 이은 말은 비수로 꽂혔다. “운동할 시간도 없을 만큼 요즘 사업이 힘든거야?”

김 대표는 “그냥 좀 바빠서 운동을 못 했을 뿐인데 이런 말을 들으니 마치 치부를 들킨 것 같고 주변에서 내 사회적 능력을 깔보는 것 같은 수치스런 느낌을 받았다”며 “빨리 엉덩이라도 잘 다듬자는 생각에 힙업 운동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엉덩이에 신경쓰는 게 김 대표만은 아니다. 특급호텔 피트니스클럽의 트레이너들은 “4~5년 전부터 40대 이상 남성 대부분이 힙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 입을 모았다. 여의도의 한 호텔 피트니스에 근무하는 트레이너는 “일반적으로 남자가 어깨나 복근에 집중할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이제 남자들은 위로 딱 올라붙은 엉덩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왔던 권상우 복근보다는 할리우드 영화 ‘레드2’의 이병헌 엉덩이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얘기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거엔 이렇지 않았다. 남자들은 배와 팔 근육 만드는 데 주로 집중했다. 초콜릿 조각같은 복근에 럭비선수처럼 큰 팔이 소위 운동 좀 한다는 남자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졌고, 중년 남성은 뱃살빼기에 골몰했다.

그런데 왜 엉덩이에 집중하게 된걸까. 우선 옷을 젊게 입기 위해서다. 최근 남성복 트렌드는 몸에 딱 맞는 디자인이라 이를 소화하려면 슬림하게 잘 다듬어진 몸매가 필요하다. 그냥 아저씨처럼 펑퍼짐하게 입어도 되겠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에 오른 남성일수록 젊게 입는 데 더 집착한다. 이런 옷을 소화할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변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음 유지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능력있는 남자로 비춰지려는 거다. 또 이런 엉덩이가 소화할 수 있는 옷은 실제로 다리가 더 길어 보여 옷 맵시를 살려주기도 한다.

엉덩이는 그 자체로 몸 관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위이기도 하다. 일본 정형외과 의사 다케우치 마사노리는 『중년 건강 엉덩이 근육이 좌우한다』에서 엉덩이 근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화가 진행할수록 몸의 큰 근육은 현저히 줄어드는데 특히 40세가 넘으면 엉덩이 근육과 넓적다리 근육이 해마다 1%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젊은 시절 가지고 있던 탄탄한 엉덩이는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다시 말해 퍼진 엉덩이는 몸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증거인 셈이다.

특히 오래 앉아 일하는 중년의 고위직일수록 엉덩이가 더 쉽게 탄력을 잃고 처진다. 한 대기업의 김모(41) 차장은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시간만 12시간 가까이 되다 보니 어느 순간 엉덩이가 쳐져 있더라”며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위기감에 어렵게 짬을 내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엉덩이가 남성의 성적 매력을 발산한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2010년 영국의 한 의류업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설문결과를 내놓았다. 남성 신체 중 가장 매력적인 부위로 60%가 엉덩이를 꼽은 것이다. 눈(56%)보다 많았다.

윤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