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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망신시킬 뻔한 무능 여당 … 뒤늦게 핵방호법 호들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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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오른쪽)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주에라도 임시국회를 소집해 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핵테러억제협약과 개정핵물질방호협약을 비준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왼쪽은 최경환 원내대표. [오종택 기자]

17일 오전 11시10분, 강창희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올해 들어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이하 핵방호법) 개정안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국회가 핵방호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의장국 자격으로 우리가 공약한 ‘핵테러억제협약’ 등을 발효할 수 없다. “국가의 위신이 달린 문제”(외교부 당국자)인 셈이다. 그러나 회동은 30분 만에 끝났다. “이견 없는 법안 우선 처리”(새누리당) vs “논란 법안까지 일괄 상정”(민주당)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이날 ‘20일 오후 2시 본회의 소집’을 단독으로 요구했다.

 정부는 이날 핵방호법 처리를 위해 총력전을 폈다. 국회를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는 강 의장과 최 원내대표, 전 원내대표를 잇따라 만나 “국익, 국가 체면, 박근혜 대통령의 체면”을 수차례 언급하며 처리를 당부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별도로 국회를 찾아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앞서 정 총리는 지난 주말 강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핵방호법 처리의 시급성을 당부했고, 강 의장은 18일부터 예정돼 있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주요국 순방을 취소하며 본회의에 대비했다.

 핵방호법이 화두가 된 건 지난 주말께다. 1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조해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나라 망신이니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방호법은 지난달 법안 심사를 마쳤지만, 민주당이 위헌 논란이 불거진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다른 법안들도 심의할 수 없다며 안건 처리를 막고 있다.

 그러나 조 의원이 기자회견을 할 당시 여당 원내 지도부는 부재 중이었다. 최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칠레에 있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쿠바 등 남미 국가를 둘러본다며 해외출장을 떠났다. 이 때문에 매주 금요일 열리던 원내대책회의가 14일에는 열리지 못했다. 그날 새누리당에선 ‘상향식 공천제도 무제한 설명회’ 행사 정도가 공식 일정의 전부였다. 익명을 원한 청와대 관계자는 “방호방재, 기초연금법 등은 3월에 반드시 통과시켜 줘야 한다”며 “국회의원들이 밖으로 나가는 건 좋은데, 민생은 하고 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 7월부터 기초연금을 지급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등 여당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경제 일선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를 필두로 정부·여당이 강조하는 경제 활성화에 역행하는 정책 행보를 보이지만, 이에 대한 여당의 대응이 기민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을지로위원회가 국회 등록기구나 상설기구도 아닌데, 노사분쟁 현장까지 개입해 공정한 사업 평화를 깨는 등의 행위가 잦다”며 “여당 지도부의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으니 을지로위원회가 수퍼 갑으로 행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 개혁을 외치고 있는데 여당은 을지로위원회를 막아주기는커녕 오로지 표만 쫓아가느라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에서도 청와대를 향한 비판이 나온다. 평소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다 급작스레 안건을 들고 나왔다는 거다. 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미리미리 당부했으면 당이 안 챙겼겠느냐”며 “청와대에서 소통을 소홀히 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애초 최 원내대표를 특사로 보낸 것부터가 참모진의 잘못이란 얘기도 나온다.

글=권호·김경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핵방호법=핵 관련 범죄자 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핵 범죄행위 대상 물질과 시설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개정안.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때 처리키로 한 핵테러억제협약과 핵물질방호협약의 선결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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