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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MoMA숍 가방 우리가 만들었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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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더나누기’는 버리는 원단을 얻어 디자인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정용빈 대표(앞줄 가운데)가 직원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프리랜서 공정식]

첨단 예술 전시장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내 디자인 아이디어 상품 매장(디자인 숍)에 가방·지갑·장갑·레인코트 등을 납품하는 업체. 생산직원은 노인과 장애인들. 재료는 섬유·가죽업체에서 버리는 원단….

 이런 사회적 기업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사회적 기업 연합’이다. 대구의 ‘더나누기(The Nanugi)’가 그 주인공이다. ‘본사’ 역할을 하는 대구·경북디자인센터 내 사무실에서 제품 디자인과 영업·판매를 하고, 생산은 대구지역 사회적 기업들이 맡는 곳이다.

사회적 기업 ‘더나누기’가 버리는 옷감을 얻어 처음 만든 색동 짝짝이 슬리퍼. 5월부터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내 상점에서도 판매한다. 국내 판매가는 1만원. [사진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출발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삼성전자 디자인센터장 출신인 정용빈(64) 대구·경북디자인센터장이 센터 10층의 섬유업체 연구소에 들렀다가 고급 원단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모습을 봤다. 버리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주워 와서는 디자인센터 직원들에게 “뭔가 만들어 보라”고 했다.

 직원들은 천 조각을 기워 붙인 ‘색동 슬리퍼’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보였더니 평이 나쁘지 않았다. 더나누기 이경남(39·여) 사업디자인팀장은 “상품성이 있는 데다 원단을 거저 얻어 쓰는 것이어서 사업성도 있을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사업체를 차릴 생각을 하고 가방과 지갑 등을 만들어 2011년 고용노동부가 주최하는 ‘지역브랜드 일자리 경진대회’에 나갔다. 덜컥 최우수상을 받았다. 고용부에서 창업 지원금 7억5000만원이 나왔다. 그걸 바탕으로 2012년 6월 사업체를 차렸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버리는 옷감·가죽 등 재료를 무상으로 줄 곳을 물색했다. 30여 업체가 나섰다. 버리던 원단을 주면 기부영수증을 받을 수 있어 원단업체로서도 이득이었다. 이렇게 더나누기는 등산복을 만들고 버린 나일론으로 가방을, 구두를 만들고 남은 가죽으로 지갑을, 와이셔츠를 제작하고 쓰레기통에 던지던 폴리에스테르로 무릎담요를 만들게 됐다.

 다음은 생산자를 찾을 차례. ‘물물’ 등 꼼꼼하다는 평을 받은 대구지역 사회적 기업 7곳을 찾아 생산을 맡기기로 했다. 전문 지식이 필요한 디자인·마케팅은 센터와 전문가인 ‘재능 기부자’들이 담당했다. 생산품은 GS숍·롯데닷컴 같은 온라인쇼핑몰을 통해 먼저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창립 첫해인 2012년 매출이 5억원, 지난해엔 1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20억원이 목표다.

 2012년 가을엔 MoMA에 진출했다.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안에 한국지점을 둔 글로벌 섬유소재 교역업체 ‘머티리얼커넥션’의 눈에 띄어서다. 이 회사 본사의 미켈레 회장이 센터 안에 진열된 더나누기 제품을 보고는 “예쁜 상품이 있다”고 MoMA에 알린 것이 계기였다. 다시 뉴욕 MoMA가 소개해 지난해엔 일본 도쿄 현대미술관 내 디자인숍에 레인코트를 공급했다.

 더나누기는 21일 문을 여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안에도 매장을 낸다. 상품을 팔고, DDP를 찾아오는 외국 바이어를 통해 해외 판매망을 넓혀 보겠다는 전략이다. 해외 추가 진출을 위해 수익의 일부를 떼어 적립하는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8억여원을 대는 등 측면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소외계층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의 대표 모델이 될 가능성이 보여서다. 더나누기 정용빈 센터장은 “원단 쓰레기에서 작은 기적이 피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더나누기는 매년 버는 돈에서 3000만원을 떼어 결식아동 급식비로 보내고 있다. 회사를 세울 때부터 마음먹었던 일이다. 이름에도 이런 생각이 배어 있다. ‘더나누기’의 ‘더’는 영어 정관사 ‘더(the)’이기도 하지만 ‘벌어서 한 번 더 나눈다’는 뜻의 ‘더’이기도 하다.

 더나누기가 모델로 삼는 기업은 스위스 ‘프라이탁(Freitag)’이다. 버리는 트럭 덮개 등을 수거해 개당 80만원짜리 가방을 만드는 업체다. 세계 100곳의 매장에서 명품 반열에 오른 제품을 판매한다. 정 센터장은 “프라이탁이 있는 유럽에 매장을 내고 경쟁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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