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의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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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빌면 사람의 인격은 7세 이전에 이미 잠재 의식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한다. 성장 환경이란 그처럼 중요한 것이다.
「슈바이처」박사는 1세기 전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인 「알사스」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음악에 심취했으며 종교적인 분위기에 젖게 되었다.
7세 때인가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고무총을 가지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를 겨냥하고 있었다.
「슈바이처」소년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때마침 교회의 종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새들은 깜짝 놀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슈바이처」소년은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온 가족은 식사 때마다 소리내어 기도를 드린다. 「슈바이처」소년은 그 기도가 끝나면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하나님. 숨쉬는 모든 동물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여 주십시오.』 그는 언젠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늙은 말(마)을 길에서 본 생각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소년과 씨름을 하게 되었다. 상대편 아이는 나이도 많고 몸집도 컸지만 「슈바이처」는 그를 넘어뜨리고 말았다. 그 소년은 화를 참지 못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도 너처럼 한 주일에 두번씩 고깃국을 먹으면 너 같은 것은 문제없어!』
「슈바이처」는 평생을 두고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1904년 가을 「슈바이처」는 우연히 「콩고」지방의 전도 문제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 뭣인가 결심한 바가 있었다. 1905년 그는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30세가 되는 해였다. 그 무렵 「슈바이처」는 이미 철학가로, 또 신학자로서 상당한 저서도 갖고 있었으며 음악가로서의 명성까지 쌓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아프리카」의 원시림 속에서 토인들을 위한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사코 말렸다.
「슈바이처」는 그때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을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시몬」과 「안드레」가 「갈릴리」바닷가에서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장면을 연상한 것이다. 「슈바이처」로 하여금 그와 같은 결단을 내리게 한 동기는. 무엇일까. 『모든 생명은 생명으로서 신성한 것이며, 적어도 괴로와하는 생명이 있으면 이것을 도우려고 헌신할 때 비로소 인간은 윤리적이다」 따라서 그는 늘 살려고 하는 생명들 속에 둘러싸여 자기도 살려구하는 생명임을 의식하고 『내 주위의 어떤 생명 의지도 내 것과 동등하고 신비한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는 「선」이란 『생명에 대한 사랑』, 그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 경외의 사상』을 몸소 체험하고 실천한 것이다. 그의 철학에는 따뜻한 심장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그의 10주기. 새삼 성자의 생애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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