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코·네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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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리스본」의 뒷골목은 으례 「마카담」으로 포장되어 있다. 주먹만한 크기의 돌멩이들이 물결 무늬를 지으면서 「모자이크」처럼 깔려 있는 것이다. 황혼이 질 무렵이면 이 돌멩이들엔 석양이 반사되어 여간 아름답지 않다.
이 무렵 가로를 산책하면 주사에서 흘러나오는 「포르투갈」 특유의 가요를 들을 수 있다. 「트리스테라」 (애조), 「아모르」 (사랑), 「오·메우·코라사오」 (내 마음)가 깃들인 「멜러디」. 「포르투갈」 사람들은 그런 노래를 「파도」 (fado)라고 부른다. 「운명」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명칭.
요즘 그런 「파도」 중에서도 『바스코·네그로』라는 노래가 유행을 하고 있는가 보다. 「검은 거룻배」라는 뜻의 이 노래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가사로 엮어졌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솔」을 걸친 여가수가 비탄에 젖은 얼굴로 풍랑과 싸우며 가물거리는 거룻배의 운명을 흐느끼듯 노래한다. 이런 감상조의 노래라기보다는 흐느낌이 「포르투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4월 「포르투갈」 사람들은 500년 제국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고 기대했었다. 인구 불과 9백20만명 정도의 나라에서 영토의 10여 배가 넘는 식민지를 거느리고 실속도 없는 허장 성세를 부리는 강권 정치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비로소 그 맑고 푸른 「포르투갈」의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혁명의 악순환은 거듭되어 어느새 새로운 세상은 붉은 세상으로 바꾸어지고 있었다. 군부의 강권 정치는 여전히 거듭되고, 그들의 정치 노선은 하루가 다르게 좌경으로 기울어 갔다. 「포르투갈」은 전통적인 「가톨릭」세의 나라로, 국민의 90%이상이 신자다. 공산주의가 이런 풍토에 쉽게 뿌리를 펼리가 없다. 그러나 집권 세력은 일방 통행으로 좌경을 고집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경제는 60% 가량이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 「올리브」유·포도주 등은 세계 시장에 수출되는 인기 품목들이다. 「코르크」는 세계 시장의 점유율이 50%나 된다. 이들은 대부분 영세한 농민들에 의한 가내 수공업의 제품들이다.
결국 행방 없는 이 나라의 정치 노선은 이들의 생활에까지 타격을 주게 되었다. 수출은 줄어들고 무역 적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포르투갈」 농민들은 실로 누구를 위한 혁명인가를 회의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시위를 하는 것은 말하자면 운명적인 항거인 것도 같다.
풍랑과 싸우는 거룻배의 운명을 슬퍼하는「바스코·네그로」가 오늘 「포르투갈」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그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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