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제대로 안된 민족 기록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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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공부가 민족 기록화를 제작하기는 이번이 3번째. 전승편과 경제편이 각 20점씩. 총 6천여만원의 예산으로 1년만에 완성해 공개 중이다 (12∼26일·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
기록화는 횟수를 거듭함에 따라 표현상의 「테크닉」이나 고증은 훨씬 좋아진 셈이다. 물론 새마을이나 경제 발전 기록화는 맥 빠진 풍경화의 타성을 못 벗은게 태반이지만 역사물의 경우엔 좀더 성의가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이들 기록화가 계속 제작됨에 따라 몇가지 문제가 부수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기왕 국가적 사업으로 벌일 바에는 보존 가치가 있는 물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역사물의 경우 고증이 잘못되면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쉽다.
화가들은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이유로서 작품료가 부족하다고 불평이다. 이번 3백 호당 제작비는 1백50만원 내외이지만 회의비·화구 구입비 등을 공제하고 나면 고작 1백만원의 실수입 밖에 안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고증을 엄밀하게 한다든가, 정성 들여 오래 그릴 형편이 못 된다고 화가들은 말한다.
물론 이번에도 고증 위원회는 있다. 이병도 박종화 이은상 유광렬 유봉영 최영희씨 등.
그런데 위원들은 제작 방향을 위한 기본 자료를 모아 제시한다든가 두 세 차례 회의를 통하여 조언해 주는 정도에 그칠 뿐. 보다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별개의 전문적인 실무위가 제작업무를 집행해야 할 것이라고 한 위원은 제의한다.
전시중인 전승편 기록화 가운데 대표적인 타작은 국적이 없어져 버린 박각순씨의 『살수대첩』. 이용환씨의 『귀주대첩』이나 김서봉씨의 『삼별초의 대몽항전』, 김형구씨의 『한산대첩』 등도 안이하게 처리된 작품 같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런 개개 작품의 우열보다 전체 그림들에 대한 일관된 고저이다. 가령 전선의 경우- 이번 전승편 20점 중 해상 전투 광경이 4점인데 배의 모양이 제각기 판이하다. 『장보고의 해상 활동』 (박광진)은 요즘 데구리 배라 일컫는 어선형이고 『한산대첩』의 일부 배는 유람선이라면 알맞을 정도로 섬약한 모습
『삼별초의 대몽항전』에서는 아적이 같은 배 모양인데다가 현호에 붙인 여장이며 배 크기 등이 걸맞지 않는다. 노는 재래의 입식 노가 아니라 모두 서구의 좌식 노 (커터)이거 『명량대첩』 (김기창)의 전투는 장관이나 배의 동력에 관해선 불분명하다. 모두 깃발이 나부끼는데 노에 의존돼 있을 뿐 돛 (범)을 찾아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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