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앵글로 관찰한 진중권 - 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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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쟁점마다 쏟아내는 그의 직설을 두고 누구는 통쾌하다 말하고 누구는 경솔하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그가 트위터에 한마디 촌평을 남기면 숱한 찬반 댓글이 붙는다. 그만큼 주변의 칭찬과 공격에 노출된 인물도 없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날 선 독법(讀法) 너머로 행복을 말하는 진중권 교수의 또 다른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고전이란 누구나 읽은 척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하던가. 일 년이면 수만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한 권의 책이 20년간 팔리고 읽힌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그렇게 20년을 읽혔다면 어느덧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도 하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휴머니스트)가 어느덧 출간 20주년을 맞았다. 책 이름을 모르는 이도 진중권이라는 이름 석 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미학 오디세이』가 80만 부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진중권은 논객의 타이틀을 달고 수많은 논쟁과 담론의 한복판에 있었다.

서울대학교의 특이한 점을 몇 가지 들자면 미학과와 외교학과(최근에 정치학과와 통합됨)가 있다는 것, 일본어과나 일본문학과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어 관련 전공이 없는 이유는 도쿄대에 한국어 관련 전공이 없어서라 하고, 세계에서 유례없는 외교학과와 정치학과의 구분은 1959년 당시 정외과의 유력 교수 두 분이 싸워서 분과했다는 설이 들린다. 미학과를 단일 학과로 두고 있는 대학은 세계적으로도 도쿄대와 서울대 정도라고 한다. 그런 서울대 미학과가 낳은 유명인으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 진중권, 그리고 진중권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변희재씨가 있다.

미학과란 이름이 예뻐서 갔다는 얘기가 있던데 진짜인가요

- 미학(美學). 얼마나 예뻐요. 미학이 뭔지 전혀 모르고 무작정 “나 이 과 갈래” 하고 들어간 거예요.

법대나 경제학과 1지망 썼다 떨어지고 2지망으로 간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마구 드는데(웃음)

- 법대는 성적이 안 됐고, 나 때는 1지망 2지망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엄청 놀다가 정학을 맞을 정도였죠. 그래서 출석 점수가 5.8점이 깎이고, 내신 성적도 4등급이었어요. 그런데 학력고사는 법대 빼고는 다 갈 수 있는 성적이었어요. 제가 인생을 좀 빨리 이해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인생 운운하고 다녔는데, 한마디로 학력고사는 좋았는데 내신 때문에 떨어진 셈이죠.

양정고등학교 나왔죠? 그렇게 좋은 학교도 아닌데 거기서 4등급을 받았어요. 양정고 학생들한테 뭇매 좀 맞겠는데?(웃음)

- 난 고 1, 2 때 정말 행복했어요.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했던 그 시절. 그러는 당신은 어디 나왔는데요?

저는 경기고등학교요

- 그때 뺑뺑이였잖아.

그래도 경기고에서 서울대 많이 갔어요. 70~80명? 양정고는 그때 6~7명 정도 갔나요

- 무슨 소리! 우리도 20명은 갔어요. 반에서 2등 한 애들까지는 서울대 갔어요. 생각해보면 우리 때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이 학생들 되게 무시하지 않았어요? “야 이 평준화들아” 하면서. 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들이 저한테 평준화 운운하면 제가 “사실 평준화 아니었으면 저 이 학교 안 왔어요” 그랬다는 거야.

그때부터 말에 가시가 있긴 했네요. 어디 살았는데 양정고를 다닌 거예요

- 원래 집은 김포였는데 위장 전입했어요(웃음). 당시에는 위장 전입이 다반사였죠. 그나저나 젊은 나이에 스타 저술가가 됐어요 미학과를 들어갔지만 미학 공부는 거의 안 했어요. 제대 후 대학원에서 미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한 것이나 마찬가진데, 모르던 걸 알게 되니 재미있어 죽겠는 거예요. 그 즐거움이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에 그대로 담겨 있어요. 지금 쓰면 그렇게 못 쓸 겁니다.

사실 미학이란 게 아직도 대중에게는 생소해요

-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미학이 뭐냐는 거예요(웃음). 영어로 미학이 에스테틱스(Aesthetics)인데, 한마디로 미학은 ‘미와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고 할 수 있죠. 철학은 결국 ‘진선미’를 추구하는 학문인데 진(眞)은 존재론이나 인식론으로, 선(善)은 윤리학으로 나타나고, 마지막 미(美)를 다루는 게 미학입니다.

『미학 오디세이』랑 비교되는 책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더군요. 두 분은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저자이신데…, 또 과 선후배 사이더라고요

- 유 교수님(67학번)이 15년 선배예요. 그런데 친분은 그다지 없어요.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예전에 제가 라디오 진행할 때 한 번 전화 인터뷰하고,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유세장에서 만나고, 그리고 얼마 전에 대담을 한 적이 있죠. 그렇게 딱 세 번 봤어요. 유 교수님 답사기를 읽으면서 ‘이런 방향의 접근도 가능하구나’ 감탄했는데, 교수님 책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을 언젠가 서양 미학의 관점으로 해석해보고 싶어요.

아이러니컬하게 변희재씨도 미학과 12년 후배예요

- 안 그래도 내가 변희재씨에 대해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진심으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거든. 그랬더니 미학과 내에서도 평이 좋진 않아요. 후배들이 탄핵 대자보를 붙인 적도 있다고 하고. 당시에 강준만 선생을 쫓아다니고 했다는데 그분이 키워준 셈이죠 뭐.

기획=정은혜 기자, 글=강용석
사진=문덕관(studio lamp), 장소 협조=스프링 컴 레인 폴(02-3210-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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