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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세계경제의 위기 분석-자본주의는 살아남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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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높은 실업율과 「인플레」에서 허덕이고 있는 미국경제는 『자본주의가 과연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가』하는 기본적인 체제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번 주의 「타임」지는 이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저널리즘」답지 않게 교과서적인 「어프로치」를 하고 있다. 하고많은 체제상의 병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것이 동지의 결론. <편집자주>
미국건국의 역사와 같이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경제체제도 2백주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1776년에 발간된 「애덤·스미드」의 『국부론』은 봉건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는 자본가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때까지 인류가 생산·축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부」의 생산을 가능케 한 경제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날 이 혁명의 후예들은 승리를 축하할 형편이 못된다.
자본주의에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지지자나 비판자나 다 같이 『자본주의는 과연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이 같은 의문은 자본주의 세계의 총수인 미국이 「인플레」속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한층 더 절박해지고 있다. 미국이외에도 자본주의의 모국인 영국이 연 28%의 「인플레」를 보이고 「캐나다」(10·1%) 「오스트레일리아」(17·5%)도 전례 없는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어 전후 가장 성공적이었던 서독마저 「인플레」·실업과 씨름을 하고 있다.
「인플레」 속의 불황이 가장 임박한 위험고비이긴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근원적이고 미묘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정부의 단속기관·노조·대기업 등의 막강한 영향력이 시장경제 체계를 위협하고 있다. 청년 지성인 층에서는 자본주의가 기껏해야 「부」를 축적할 뿐 「공정사회」는 낳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고 지난 1월 북구의 석학 「군나르·뮈르달」, 「하버드」의 교리경제학대가 「케네드·애로」 등 7명의 「노벨」상 수상자는 서구자본주의가 1차적으로 기업이윤만 축적시키는데서 위기를 몰고 왔다고 지적, 이 체제에 대신할 새로운 체제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반성에도 불구하고 「애덤·스미드」의 충실한 후예인 「밀튼·프리드먼」은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 자본주의 체제의 「자유」가 결코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지배적인 흐름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좌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를 매도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 이 체제는 전생·불황·식민제국몰락 등 온갖 고비를 다 겪고도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힘과 적응능력이 이 체제를 파괴하려는 열렬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역설적인 현실이다. 신좌파 철학자 「헤르베르트·마르쿠제」 같은 사람도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동기를 「부결」한 것으로 규정하면서도 이 「동기」는 참으로 압도적인 것이라 자본주의의 몰락이 당장 닥쳐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윤동기의 막강한 힘은 소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소련은 집단농장 농부들에게 여가를 이용해서 자작한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전체 경작지의 4%에서 나오는 이 작물이 전체 농산품의 4분의1에 이르고 있다.
자본주의와 전체주의 경제체제를 비교하는 논의는 두 가지 질문으로 압축된다.
첫째 어느 체제가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 둘째 어느 체제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공정하고 소망스러우냐 하는 것이다. 전체주의 체제는 그것대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설득력이 있다. 이 체제는 자유를 제약하는 대가로 「안정」과 공정을 가져다준다.
또 위장실업과 저생산의 기반 위에 완전고용을 실현시키고 물가통제에 의해 가격안정을 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느 면에서나 자본주의가 훨씬 윤기 있는 것이었다. 「오토·엑스타인」은 『자본주의는 고도의 혁신과 새로운 상품을 개발시킨 유일한 「엔진」이라고 했다.
자본가는 산업혁명이후 경제사회를 이끌어온 모든 기구를 발전시켰고 사회주의 경제체제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소비재를 만들어 냈다.
허다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 체제는 소비자 기호를 끊임없이 청취하는 고도로 발달된 「컴퓨터」 기능을 해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경제의 상표에는 저생산성·상품기근·가게 앞에서의 장사진이 붙어 다닌다. 「니키타·흐루시초프」는 소련이 자본주의화 한다는 비판 앞에서 『이윤동기만이 사람을 보다 부지런히 일하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대답했었다.
자본주의의 우월한 생산성은 전기칫솔을 만들어낸다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미·가·호의 농산물이 굶주리는 다른 국민까지 먹여 살렸다는데 있다. 소련은 노동력의 30%가 농사에 붙어있지만 곡물을 수입하는 실정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은 독재국가에서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독재국가도 자본주의 국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제가 독재자 사유경제이기 때문.
요약해서 얘기하자면 부와 자유를 약속해주는 자본주의 체제에의 대안은 없다. 일시적인 병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가까운 장래에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번영과 체제의 확산을 가져올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나가는 「애덤·스미드」의 신비로운 이 체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판단을 위해 「윈스턴·처칠」의 민주주의에 관한 결론을 원용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체제다. 단 인류가 시도해 보았으나 자멸해버린 모든 다른 체제들을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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