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약 복용 쉬쉬? 미국선 생리불순 치료용으로도 먹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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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피임을 하지 않고 성관계를 가질 경우 임신을 경험할 확률은? 피임 방법마다 피임 실패율은?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사회는 피임에 무관심한 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심각하다. 2012년 아시아 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여성은 피임을 전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의 성관계 시작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2011년 13.8세), 이들이 임신 시 낙태율은 80% 를 웃돈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은 여성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불임을 비롯한 각종 합병증을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된 피임 및 성교육이 이뤄져야 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하버 UCLA 메디컬센터 아니타 넬슨(Anita Nelson) 교수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임순 청소년성건강위원장과의 대담을 통해 피임과 산부인과 상담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다. 넬슨 교수는 피임·여성생식의학 권위자로, 앞서(2월 27일) 열린 ‘여성 건강과 생명 존중을 위한 피임 상담문화 정책방향’ 국회토론회연자로 초청돼 방한했다.

이임순 위원장(이하 이)=한국 여성의 첫 성관계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계획적인 임신, 피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아니타 넬슨 교수(이하 넬슨)=계획적인 임신은 적절한 시기에 산전관리를 시작할 수 있다. 저체중아 출산이나 기형 등을 줄일 수 있다. 산모와 태아의 건강 증진 측면에서 임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적절한 피임이 예방의학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다.

이=여 중·고생의 80% 이상(2011년 83.4%)이 임신 후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했다. 낙태 시에는 여러 정신적·육체적 부작용이 따른다. 낙태 경험으로 인해 결혼 후 성생활을 잘 못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육체적으로는 골반염이나 난관폐쇄, 불임증이 따를 수 있다. 미국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나.

넬슨=1970년에 ‘타이틀 X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전국 4100개 센터에서 올바른 피임법, 여성암 검진, 성병 검사 및 치료를 제공한다. 2013년 한 해에 원치 않는 출산 58만6000건, 낙태 40만3000건을 예방했다. 이는 미국 전체 여성의 35%, 10대 여성의 42% 이상의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암 등 여성 질환도 예방할 수 있었다. 결국 여성 보건 전반의 증진이 가능했다.

이=한국은 원치 않는 출산 예방건수 같은 자료가 아예 없다. 여성이 산부인과 방문 자체를 꺼린다. 조사 결과 가임기 여성의 67%가 임신·생리·피임 등에 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습득 경로로 산부인과 전문의를 꼽으면서도 51%는 산부인과 방문 경험 자체가 없다. 평균 초혼 연령인 29세까지 미혼여성 절반은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넬슨=물론 상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것은 미국도 비슷하다. 여성이 주치의한테 상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말 것을 원한다. 비밀 유지가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 ‘여성이니까 당당하게 여성질환 예방과 검진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산부인과 상담의 필요성은 또 있다. 국내 여성의 피임에 대한 지식 조사에서 정답률이 34%에 그쳤다. 전문가에게 정보를 얻지 않고 잘못된 정보를 친구나 인터넷을 통해 얻은 결과다. 경구피임약(사전피임약)을 안 먹는 이유로 불임·비만에 대한 우려, 인체 유해성을 꼽았다. 잘못된 상식이다.

넬슨=피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중요하다. 정보가 있어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담을 받아서 피임약을 제대로 복용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이=피임법도 많고 피임률도 저마다 다르다. 월경주기법, 질외사정은 피임 실패율이 각각 9~25%, 4~27%다. 콘돔도 실패율이 2~15%다. 경구피임약은 피임 실패율이 0.3~8%, 자궁 내 장치는 0.6~0.8%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넬슨=미국 여성은 경구피임약을 부모 승낙 아래 복용하기도 한다.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생리불순·생리통·생리과다를 치료하는 일환으로도 복용한다. 성관계하고만 연관을 지을 필요는 없다. 미국은 성관계 시작 연령 전에 복용하기도 한다. 요즘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피임이 적절히 이뤄지는 방법도 있다. 상담 시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먼저 제공하고, 여건상 안 되면 그 다음 피임법을 제안한다.

이=보통 ‘루프’라고 불리는 자궁 내 장치는 염증을 일으키거나 생리 양이 증가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자궁 내 호르몬 장치는 저절로 호르몬을 조절해 종류에 따라 3~5년 장기간 피임할 수 있다. 생리 양과 생리통을 모두 감소시킨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피임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다.

넬슨=전문의 상담은 얼마나 자주 하는 것을 권하나.

이=일반적으로 초경 후 생리불순 등 문제가 생겼을 때부터 받는 것이 좋다. 초경 후 6개월 내로 상담받는 것이 가장 좋다. 그후 정기검진은 1~2년에 한 번씩 받는 것을 권한다.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고위험군일 경우 6개월마다 검사하도록 돼 있다. 생리통·생리불순이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해 조기검진이 중요하다.

넬슨=여성은 ‘내 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성병,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해 나가야 한다.

류장훈 기자

◀아니타 넬슨 교수
현 미국 Habor UCLA 메디컬센터 산부인과 전문의
현 Habor UCLA 여성 건강 관리 클리닉 MD
현 미국산부인과위원회(ABOG) 회원
피임 및 여성 질환 등 여성 생식의학 관련
200여 건의 논문과 저서 출간

▶이임순 교수
현 순천향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
현 대한산부인과학회 청소년성건강위원회 위원장
현 대한산부인과학회 피임연구회 회장
여성생식의학(피임, 폐경, 불임, 청소년 상담) 관련 200
여 건의 논문과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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