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동구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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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지적화에 고무된 북괴가 한반도정세를 오판하여 한국에 대해서도 월남형 침략전쟁을 도발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여러 「소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자신의 남침야욕을 스스로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김일성은 북경 「부카레스트」「알제」를 차례로 순방하며 주한 「유엔」군사의 해체와 미군철수를 주장, 「남한혁명 지원」이라는 도발적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요즘이다.
중공 「루마니아」「알제리」를 방문한 김일성의 행상은 요컨대 세 가지 점을 중점적으로 시사하는 듯 하다.
첫째, 김일성은 끝까지 동북아에 있어서의 미·소·일·중공의 세력균형에 기초한 남북한 휴전상태, 즉 현상을 고정하는 공존원칙에 반대하고 있으며, 여전히 혁명방식에 의한 현상타파를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북괴가 제3세계 민족주의나 공산권내의 민족주의적 수정주의를 가장 병적으로 싫어하는 극좌구조집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유엔」전략상 그러한 세력들과의 국제적 통일전선 공작에 광분하고 있다.
셋째로는, 북괴가 중공·제3세계 및 동구권의 반소 파와 제휴하여 국제적인 현상타파 노선에 집착한 결과 소련 권과의 사이가 상당히 벌어졌으리라는 관측이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북괴는 분명히 소·중공 분열시대와 자유진영 내부의 다극화 추세를 기화로 남침을 위한 새로운 전략전술을 짜놓았을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그 수법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중공 적인 전략을 본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국의 반공체제와 방위력을 약화시킨 다음 월남형 적화도식을 재탕해보려는 공작과정에서 중공·제3세계·동구 반소 파와는 일체성을 유지하면서, 일본·서구에 대해서는 별개인 자세를 유도하는 한편, 소련 권과는 굳이 우의를 상하지 않는 한계 내에서 물자지원 관계나 맺어보겠다는 것이다.
제3세계와 중공을 동조세력으로 삼고 EEC와 일본은 회유대상으로 치는 동시, 소련 권의 견제는 되도록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말하자면 북괴의 중공형 대외전략인 듯 보인다.
과언 김일성은 북경에 갔을 때 이른바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부카레스트」에서는 미국 등을 비난하는 문구에 은연중 『모든 공산당은 똑같아야 한다』느니 『핵을 전면 철폐해야 한다』느니 하는 식의 반소적 요소를 내포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소련과 미국을 초 대국 「쇼비니즘」으로 은근히 몰아붙임으로써 동구와 EEC권의 자존심을 유효하게 이용해 보겠다는 중공식 발상을 모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등소평·「차우세스쿠」·「부메디엔」을 동원한 북괴의 「유엔」전략과 대남 도발전략은 한반도 정세의 위기를 더한층 고조시킴과 아울러 소련의 불만감과 경계심을 유발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일·중공 우호조약이 무르익는 시기에 북괴마저 중공 편으로 기울어버리면, 소련의 극동전략에 절대로 「플러스」가 안 된다. 그렇다고 북괴의 남침을 인정하자니 미국과 일본의 반격을 유발하여 지금까지의 대 미. 대 서구 긴장완화가 와해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래서 영국의 권위지 「업저버」가 관측한 대로 북괴에 대한 소련의 입장은 회유와 냉담의 어중간한 혼합상태 속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괴에 의한 전면전의 도발가능성은 유보된다 하더라도, 인지 이후의 유동적인 세계정세를 틈타 그들의 자의적. 국지적인 도발을 시험해 보고자할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자주국방에 힘쓰는 한편 유효 적절한 다변적 적극외교를 전개해 북괴의 대외공작을 압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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