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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기대 속… 새 좌표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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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관배웅은「포드」이후 처음>
박정희 대통령과 김영삼 신민당총재와의 21일 청와대요담은 대통령과 야당당수란 서로의 비중, 난국이라 불리는 시점, 그리고 외면을 푼 첫 대면이란 점에서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시간의 요담이 끝난 후 접견실을 나온 박대통령이 현관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것은「포드」미대통령의 방한 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대화 분위기가 부드럽고 진지했으리라는 추측들.
대담 중에는「코피」두 잔만 들어갔을 정도.
여야당 주변에서는 김 총재가 인사말을 겸해『요즘도 승마를 하십니까』란 얘기를 꺼냈고 이에 대해 박대통령은『말은 오래 전부터 타지 않는다』고 말해 승마얘기로부터 자연스럽게 대화가 풀려 나갔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김 총재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일부 신민당간부는『8·15사건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이니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해 정중한 조의를 표하는 게 좋겠다』고 했고 이중재 의원 같은 이는『「메모」를 갖지 않고 들어가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하긴 국가원수를 만나는 자리이니 만큼 대통령의 건강이나 중대국사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또 대통령으로서의 고충이나 심경 등을 격의 없이 털어놓을 수 있으리라고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다.
세계지도를 펴 보이며 안보문제에 관해 소신을 밝힌 대통령에게 야당의 사태평가, 협조한계 등을 충분히 진언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며 한 신민당간부 말대로『부조리제거, 긴급조치문제 등도 거론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별실 대기시간 중 서로의 시국관을 펼쳐 보인 김성진 청와대대변인과 이택돈 신민당대변인 사이에도 우호분위기가 이루어져『이 대변인이 듣기와는 달리 정말 합리적인 사람』『김 대변인이야말로 국제정세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격찬이 헤어진 뒤의 인물평으로 오갔다.

<극한투쟁 선회할 명분 얻어>
여 야 수뇌의 대좌 뒤에 정국의 기상도에 어느 만큼의 난류가 그려질 것이냐는 아직은 예보가 어려운 상태다.
23일 신민당소속 8대 의원이었던 김한수씨(40)가 안양교도소를 가출옥한 것이 요담 후 이루어진 정국해빙의 첫 신호임은 분명하다.
신민당 사람들도 김 총재가 요담보따리를 끌러놓지 않아 기대만을 걸어놓고 있는 상태.
22일 확대간부회의에서도 간부들은『보따리를 끌러놔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니냐』고 졸랐으나 실패했다고 채문식 의원은『보자기에 싸놓고 얼버무리기만 하면 곤란하다』고 했고 어느 정무위원은『진산은 청와대를 다녀 나와 오랜 시간 동안이나 당 간부들에게 요담내용을 털어놓았다』며 보자기 공개를 요구.
그러나 보자기를 끌러놓지 않더라도 청와대 행을 계기로 김 총재의 당내비중이나 유연성을 띤 「김영삼 이미지」는 훨씬 크게 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극한 원외투쟁에서 선회할 수 있는 명분을 찾은 데다 반 주류의 신축노선주장이 공격목표를 잃게됐기 때문이다.
고흥문 정무회의부의장 같은 이도『이번 대화가 김 총재를 살렸다』고 말할 정도. 물론 당내에서 다른 평가가 없을 수는 없다.『김 총재의 행동반경이 강경 일변도였기 때문에 강경노선의 선회는 바로 김 총재의 설 땅을 흔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김 총재는 자기좌표를 잃게 될 것』이란 것.

<여서의 김 총재 호칭도 격상>
21일 요담 이후 여당이 주도하는 여야협조의 정치체제는 안보에 관한 한 반대당 아닌「우당」을 목표로 한 것이어서 공존「플랜」은 다채로운 편.
그중 하나가 약 3개월간에 걸친 전후방 국군장병 공동위문계획이다. 또 지역개발사업에의 공동참여, 미국의회를 상대로 한 의원사절단파견, 「유엔」을 겨냥한 순방외교 등에 있어서의 적극적인 야당참여 등도 거론되고 있다. 「사견」임을 달아 김용태 총무가 밝힌 여야당 및 3부 수뇌진의 월1회 정도의 정기모임, 야당의 무임소장관 입각, 또는 공화당이 2·12 국민투표 과정에서 제의한 여야중진협의체구성 등도 불발로만 끝나리라고 보지 않고 있다.
이번 요담의 성과를『필요할 때 야당 총재가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점』이라고 한 김진만 부의장은『북괴의 통일전선에 맞서는 방공전선의 구축으로까지 발전되길 바란다』는 기대조차 갖고있는 실정. 그러나 박준규 정책위의장 같은 이는 여야 밀월여행 기대론에 신중한 자세여서『아직은 치마폭을 벗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
협조분위기조성과 함께 여야 간부들의 김 총재에 대한 호칭은『김 총재』『그분』등으로 격상됐다.
신민당의 대여투쟁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는 정국흐름을 좌우할 큰 요소.
김 총재는『면담이 있었다고 해서 새삼스레 옆으로 갈건 가 뒤로 갈건 가』라며 『당의 진로가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말하지만 당내 중진들은 전략상의 변화는 다소 있을 것이란 분석들.
고흥문 정무회의부의장은 『사실상의 정치휴전상태가 더 계속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고, 이철승 국회부의장은『체제논쟁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부드러운 쪽으로의 대여자세 전환은 하나둘 노출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 총재가 주재한 23일 민주전선편집회의에서도 종래 중점을 두었던 체제문제 보다는 부정대출. 외화도피·재산세인상 등 경제적 부조리를 파헤치는 데 치중키로 한 것이라든지, 이택돈 대변인이『신민당이 민주회복을 위해 내놓은 개헌·안보·부정부패·경제의 4「카드」중 앞으로는 부정부패와 경제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한 발언 등이 그런 예.
다만 신민당의 대여투쟁에 변화가 있다고 해도 한계가 그어져 있다.
『안보·국방문제에 관해서는 신민당도 이미 거국체제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냐』는 채문식 의원의 말처럼 안보·국방문제에 대한 초당적 협조를 위해 체제논쟁을 유보하는 정도일 뿐 국정전반에 걸친 시시비비라는 야당의 기본적 기능은 계속 살려나갈 것이 확실하다.

<외지, 난국 극복 의견일치 평>
박대통령과 김 총재 요담을 다룬 외국신문보도는 대부분이『난국극복을 위해 의견일치를 본 회담』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뉴요크·타임스」(22일자)는 안보를 포함한 제반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했으며 두 사람은 인지사태에 따른 한국안보에 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아사히」(21일자) 신문은『박대통령과 야당당수와의 회담은 2년만의 일』로, 동경신문(21일자)은『신민당은 개헌활동 중지하고 거국일치체제에 협력할 듯 하다』고 보도. 또「상께이」(21일자) 신문은 『난국극복에 의견일치』로, 「스타즈·앤드·스트라이프」(23일자)지는『박대통령이 인지사태 후 화해「무드」속에서 처음으로 야당당수를 만났다』고 썼다. <고흥길·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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