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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현장탐방] '여성만의 공간'에 여성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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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서울 여성플라자.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전용 종합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엔 '여성'이 없다. 주부 양은주(41.서울 중계동)씨가 하루 종일 여성플라자를 샅샅이 훑어보고 내린 결론이다.

양씨는 "엄청난 규모의 초현대식 건물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여성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중앙일보 주부 독자를 대표해 양씨가 현장 탐방을 했다. 평범한 주부의 좌충우돌 탐방기를 싣는다.

*** 여성플라자에 여성이 없네!

여성 전용 공간이란 얘길 듣고 찾아간 여성플라자는 기대보다 훨씬 컸다. 유리와 대리석으로 장식된 대형 빌딩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옥처럼 번듯했다.

너무 으리으리해서 나같은 평범한 아줌마가 와서는 안될 곳처럼 보였다. 그래도 여성전용 공간이라는데, 나같은 아줌마가 아니면 누가 여기의 주인이겠는가.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정문을 열었다.

1층 로비 풍경부터 이상하다. 모회사의 영업.마케팅 전략 세미나에 대한 안내판이 서있고 그 뒤의 로비는 남성들로 북새통이다. 20일 열린 행사 7개 중 여성단체 주최는 단 하나였다. 이상하다, 여성은 어디에 있지?

*** 주인 없는 공간

안내 데스크가 세미나 안내에 너무 분주해 보여 뭐 하나 물어보지도 못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무작정 발품을 팔기로 했다. 그 결과 건물에 빈 방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5층 건물의 절반 이상을 대관용(貸館用) 방(국제회의장.아트홀.회의실.시청각실.식당 등)과 연수실(숙박시설), 사무실이 차지하고 있었다.

잘됐다! 아줌마들의 소모임을 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아보니 사정은 달랐다. 학교 동아리 방 같은 작은 공간은 모두 합해야 5개(회의실.세미나실)였다. 임대료도 시간당 1만~4만원을 내야 한다. 나머지는 대형 회의실이었다. 소모임을 갖기엔 너무 컸다.

2층의 여성 비정부기구(NGO)센터.자원활동센터 등도 대부분 비어 있었다. 수많은 시민단체가 사무실을 빌리지 못해 고생한다는데 이 좋은 방들이 대부분 비어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결국 나같은 아줌마에게 허락된 공간은 지하 2층의 스포츠 센터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엄마가 운동하는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3층의 '별난 놀이터'에서 시간당 천원을 내면 아이를 봐준다지만 이정표 하나 세워져 있지 않았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 달랑 놀이터 명패 하나가 달린 걸 발견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자체 개설한 강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이를 맡겼다간 구석에서 눈치꾼이나 될 것 같았다.

4층에 '휴식공간 休'라는 휴게실이 있었지만 구석진 곳에 숨은 듯 배치돼 있어 찾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2층의 인터넷 카페는 아직 열지 않았다.

*** 빈약한 프로그램

스포츠 센터 시설은 좋았다. 요금은 동네 구민센터(월 4만원)와 같았다. 문제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것. 또 주차 확인을 받으려면 5층에 있는 사무실에 올라가서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한단다. 강의를 받으러 왔을 때는 주차 확인을 위해 '담당 부장'의 사인을 받아야 한다.

스포츠 센터를 제외하면 여성이 배울 수 있는 과정은 디자인 전문교육을 하는 '아트 컬리지'의 정보기술(IT)관련 프로그램이 전부다. 하지만 한 강의에 40만~50만원씩 하는 수강료를 내면서까지 여기에서 굳이 IT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2층에 있는 여성사 전시관을 찾았다. 한국 근대사를 여성의 시각으로 재조명했다는 전시관은 너무나 썰렁했다.

방명록을 살펴보니 이날 찾아와 서명한 사람이 전부 7명. 안내 데스크에 있는 자원봉사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개관 이래 채 1천명도 들르지 않았다고 한다.

전시관을 둘러보며 가장 서운했던 건 턱없이 부족한 전시물이 아니었다. 나같은 평범한 아줌마가 공감할 만한 볼거리가 없었다.

<wayfar@hanmail.net>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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