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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변협 윤리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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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사회정의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의 윤리의식을 고취해 건전한 법률시장을 다지는 데 단단한 초석이 될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달 24일 변호사 윤리장전을 전면 개정하면서 발표한 자체 평가다. 윤리장전은 2000년 제정된 이후 개정된 적이 없어 달라진 법조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윤리장전 제정 당시만 해도 4228명에 불과하던 변호사 수는 현재 1만4469명으로 급증했다. 경쟁은 심화됐고 변호사들의 일탈 행위도 따라서 늘었다.

 하지만 자체 평가와 달리 개정안이 윤리의식 고취와는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공보수를 미리 받지 못하도록 한 조항과 ▶국선 변호인들이 맡은 사건을 사선으로 전환하기 위한 상담을 금지하는 조항을 바꾸는 등 변호사 편의만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 원래 개정초안에 있던 기업 사내변호사의 ‘불법행위 보고의무’ 조항 신설은 반발에 밀려 무산됐다.

 법률 시장이 악화되면서 국선 변호에 대한 변호사들의 관심도 부쩍 늘었다. 법원에 소속돼 월 일정액(약 800만원)을 받고 국선만 전담하는 변호사는 올 초 62명을 뽑는 데 503명이나 몰릴 정도다. 이 밖에 변호사회에 신청을 한 뒤 자기 업무를 하다가 차례가 오면 국선변호에 나서는 변호사도 크게 늘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국선전담이 아닌 사선 변호도 가능한 변호인들이 국선변호를 한 경우는 지난해 7만5357건으로 전체 국선변호 중 62%에 달했다. 이들에게는 사건당 40만원의 보수를 국고에서 지급한다.

 기존 윤리장전에선 피고인에게 “나를 사선으로 선임해달라”고 설득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했다. 그런데 이번에 해당 조항을 ‘부당하게 교섭하면 안 된다’고 고친 것이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한 방법과 부당한 교섭을 가르는 기준이 애매해 언제든 사선 전환 교섭이 가능해진 셈”이라며 “국민 눈높이가 아닌 변호사들 눈높이에 맞춘 개정”이라고 지적했다.

 성공보수를 미리 받는 것을 금지한 조항 역시 이번 개정안에서 사라졌다. “이겨도 나중에 받아내기 어렵다”는 변호사들의 요구에 밀린 것이다. 최근까지 변호사 성공보수를 둘러싼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에서는 2011년 비행장 소음피해 주민소송을 맡은 변호사가 288억원의 지연이자를 성공보수로 챙겨 원고들과 법적 분쟁까지 벌였다. 특히 성공보수를 먼저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할 경우 ▶불리한 입장의 의뢰인에게 성공보수를 강요할 수 있고 ▶성실한 소송 수행을 담보하기 어려우며 ▶패소 시 돌려받기 어려운 점 등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윤리장전 제정 당시에는 손에 꼽을 정도였던 기업 소속 변호사 수는 지난해 말 1634명으로 전체 변호사의 10%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변협은 ‘사내 변호사가 업무처리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발견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 신설을 이번 개정의 핵심으로 꼽았다. 하지만 사내변호사회 등이 반대 서명운동 등을 벌이자 “사내 변호사들의 지위 약화가 우려된다”며 조항을 삭제해버렸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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