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노담화 날조라고 떠드는 일본 부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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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의 고노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본에서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정부 안에 팀을 만들어 고노담화 작성 과정을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다. 3일에는 우파 정당 일본유신회가 고노담화 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도쿄에서 열고 위안부 피해자 조사의 검증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사쿠라다 요시타카 문부과학성 부대신(부장관·자민당 의원)이 참석해 고노담화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을 속이거나 사실을 날조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여러분을)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고노담화가 날조됐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내각의 일원으로 일본의 교육정책을 맡는 고위 당국자의 퇴행적 역사 인식에 할 말을 잊을 뿐이다. 사쿠라다는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스가 관방장관이 이날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고노담화를 계승하는 것”이라고 한 만큼 사쿠라다 부대신을 경질하는 게 마땅하다. 담화가 날조됐다는 생각을 밝힌 내각 인사를 그대로 두고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면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는가. 스가 장관은 4일 사쿠라다에게 “오해가 없도록 유의해 달라”고 하는 데 그쳤고, 사쿠라다는 “발언을 취소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베 내각에서 역대 내각이 계승해온 고노담화의 정신이 얼마나 훼손됐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그 근저에는 아베 총리의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중의원 2선이던 97년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을 결성한 이래 고노담화의 개정을 꾀해왔다.

 고노담화의 부정은 인류의 보편적 인권과 역사에 대한 부정이다. 아베 내각이 여기에 집착하면 할수록 전후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쌓아올린 신뢰만 무너뜨린다. 한·일 관계도 더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일본이 고노담화를 바탕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오욕을 치유하는 데 성의를 보일 때 미래지향적 새 한·일 관계의 대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