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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돈 넘쳐흘러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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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떠도는 돈이 만기가 짧은 은행 금융상품으로 대거 몰리면서 하루짜리 콜금리가 크게 낮아졌다.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 이후 뭉칫돈이 투자신탁회사에서 빠져나와 안전한 곳으로 이동 중이다. 특히 은행의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에는 매일 2조원 이상의 돈이 흘러들고 있다.

이로 인해 은행들이 넘치는 돈을 콜시장에 쏟아내는 바람에 콜금리가 연 3.71%까지 하락했다. 시중자금이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금융권에서만 맴돌면서 단기 금리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단기 자금 MMDA로 몰려=은행의 MMDA는 단기상품이면서도 입출금이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다. 이 때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임시로 머무르는 상품 성격이 강하다.

은행 MMDA 잔액은 지난 19일 현재 57조3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연속 줄던 MMDA가 이달 들어 16조9천억원이나 급증한 것이다.

특히 검찰이 SK글로벌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11일 이후 MMDA에 13조9천억원이 몰려든 것으로 집계됐다. 보통예금.저축예금 등을 포함한 수시입출금식 예금 전체로는 지난 11일 이후 19일까지 15조8천억원이 증가했다.

반면 투신사 MMF의 잔액은 지난 20일 43조5천억원으로 지난 11일에 비해 16조8천억원 줄었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투자자들이 앞다퉈 MMF에서 돈을 빼내 MMDA로 옮겼다는 얘기다.

MMF는 실적 배당이라 경우에 따라선 원금까지 손해를 볼 수 있지만 MMDA는 단기 상품이면서도 최고 연 3%대의 확정 금리가 보장된다는 점에 투자자들이 매력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한때 하루 5조원에 달했던 MMF의 자금 유출 규모는 지난 20일 9천억원으로 줄었다. 투신사 관계자는 "MMF에서 빠져나갈 돈은 이미 대부분 빠져나갔다"며 "추가로 나가는 돈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콜금리 급락=은행들은 MMDA 증가가 반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마땅히 굴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특히 이 돈이 다른 투자 기회가 생기면 곧바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하루짜리 콜자금 등 단기로 운용하고 있다.

여윳돈을 콜시장에 내놓는 은행이 늘어나면서 콜시장에서는 돈이 대규모로 남아돌아 지난 19일부터 사흘 연속 콜금리가 연 4%를 밑돌았다.

한은은 지난 18일 이후 매일 수조원대의 돈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콜금리 하락을 막지 못했다.

지난 21일에는 한은이 통화안정증권과 환매조건부채권(RP)을 팔아 모두 5조4천억원의 시중자금을 환수했지만 콜금리는 연 3.71%로 전날보다 0.13%포인트 하락했다. 한은의 콜금리 목표인 연 4.25%보다 0.54%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한은은 조만간 콜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해 무리하게 돈줄을 죄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라크 전쟁의 진행 상황에 따라 혹시라도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어 당분간 시중 자금 사정을 여유있게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콜금리 목표를 내리는 것은 돈이 떠도는 것을 부추길 수 있어 현재로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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