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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이후의 소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사이공」이 공산군에 정복하기 직전 「포드」 미 대통령은 『미국에 관한 한 「인도차이나」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한바 있다.
이 말은 비단 「인도차이나」에 관해서 뿐만이 아니라, 열강의 전반적인 전후 「아시아」정책이 커다란 전환점에 다다랐음을 암시한 것이었다.
따라서 앞으로의 「아시아」정세는 인도양에서의 미·소의 이해 대립, 인지를 둘러싼 소·중공의 패권경쟁, 그리고 일본을 사이에 둔 미·소·중공의 전략 충돌을 축으로 해서 전개될 것이 뚜렷하다.
그 중에서도 소·중공간 「아시아」에서의 외교전쟁은 이 지역의 긴장을 격화시키느냐 또는 완화시키느냐의 중요한 관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련 지도층이 9일 전세계를 향해 공개 발표한 이른바 평화 「메시지」와 8대 외교목표는 소련 해군의 대규모 기동훈련과 함께 「모스크바」의 장기적인 「아시아」외교 포석의 일단으로 볼 수 있겠다.
중공의 「아시아」전략이 이 지역에서의 미·소의 패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소련의 전략은 탈 미국화 지역으로의 적극적인 개입에 역점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태평양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지난번 해군 기동훈련은 「로키트」사격·대잠공격·상륙 연습 등 주로 미 7함대를 가상적으로 한 태평양 제패 작전이었음이 분명한 것이다.
미 7함대가 「요꼬스까」항을 비우고 인지해역에 몰려있는 것을 기화로 소련의 「미사일」 순양함과 잠수모함, 미사일 구축함 등을 포함한 거대한 해군력은 전지구적인 「힘」의 「데먼스트레이션」을 과시하면서 「쓰가루」(진경) 해협과 대한해협을 비롯해 「아시아」 대륙의 남방을 온통 포위하다시피 했었다.
이 강렬한 남하 자세를 뒷받침할 양으로 「모스크바」는 인지 공산국들의 전후 복구사업에 원조를 약속하는가 하면, 「뱅글라데쉬」해군기지를 획득하고, 인도의 「시킴」병합을 지지하는 등 적극적인 반 중공 외교공세를 펴나갔다.
일·중공 평화조약 역시 반소적인「무드」를 풍긴다고 해서 이른바 「패권조항」에 시비를 걸고 일본에 항의각서를 전달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 모든 움직임들은 「모스크바」가 인도와 일본을 발판으로 해서 탈 미국화 이후의 「아시아」를 대 중공 방역지대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인지사태를 이용해 미국내의 독립주의적 요소와 일본의 「자주외교」 논의를 부채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급격히 군사력을 증강, 인도양·「말라카」해협·태평양·극동 일대에서의 군사력 「밸런스」를 뒤집어 놓음으로써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고 일본을 중공 견제외교에 끌어들이려는 것이 「모스크바」의 당면한 계략인 듯 하다.
때문에 일·중공 평화조약체결의 성숙이야말로 「모스크바」에는 최대의 도전적 정세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의 지지가 없이는 중공포위를 겨냥한 그들의 이른바 「아시아」 집단안보안도 신기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로 소련의 집단 안보안에 기울고 있는 나라는 몽고·「아프가니스탄」·인도· 「뱅글라데쉬」·「스리랑카」등 몇 개국에 불과하다. 북괴 역시 중공에 경사 했으며 「크메르」와 「하노이」·「베트콩」도 집단안보보다는 「자주노선」을 활용할 공산이 더 크다.
소련은 과연 태평양 국가의 일부가 될 것인가. 미국과 일·중공은 이 남진현상을 그대로 방임할 작정인가. 태평양과 인도양에 포진한 소련 해군력은 미·일 안보체제와 중공의 뒤통수를 압박하는 새로운 긴장요인으로 부상할지 모른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일 3각 연대를 더욱 강화하여 극동과 태평양에서의 힘의 우위를 계속 확보함으로써 소·중공세의 경쟁적 남하를 확대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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