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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현대차의 최대 적수는 삼성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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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지난 1월 미국의 가전쇼(CES)에 다녀온 김도훈 산업연구원(KIET)장은 “엄청난 변화를 감지했다”며 흥분했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휘는 디스플레이나 우리 뒤를 맹렬히 추격해 오는 중국이 아니었다. 그는 “삼성의 갤럭시 기어로 BMW i3를 제어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 했다. 좋게 보면 자동차와 정보통신(IT)의 융합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초(超) 거대산업인 자동차와 IT의 정면승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요즘 세계 증시에서 가장 핫(hot)한 업체는 미국의 전기차인 테슬라다. 지난해 주가가 다섯 배가 뛰었고, 연초 두 달간 70%나 수직상승했다. 넉 달 전의 배터리 화재도 무서운 질주를 막지 못했다. 설립 후 10년간 단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업체. 판매량도 고작 2만3000여 대인 회사. 그런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310억 달러로, 연산 1000만 대인 GM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비밀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구색용 ‘미끼 상품’으로 여겼다. 자신들이 지배하는 휘발유·디젤 엔진 시장을 흔들지 않도록 전기차의 성능을 볼품없게 제한했다. 테슬라는 이런 상식을 뒤집었다. 외관만 자동차의 흉내를 냈을 뿐이다. 그 안에 리튬이온 전지를 아낌없이 듬뿍 깔아 고급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췄다. 센타페시아의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으로 차량의 모든 기능을 통제한다. 자동차를 ‘달리는 IT기계’로 완벽히 변신시킨 것이다.

 현재 자동차 제조원가에서 전장(電裝)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1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일부에선 “지나친 IT화로 자동차의 기술적 결함이 빈발할 것”이라 경고한다. 하지만 앞날이 궁금하다면 고급차를 보면 된다. 1억원 이상의 플래그십 자동차들의 전장화 비중은 이미 50%를 넘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60%, 전기차는 70%나 된다. 아우디의 루퍼트 슈타들러 회장은 CES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제 자동차는 이동수단이 아니다. 요즘 자동차의 혁신은 대부분 IT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 안전인증업체인 UL코리아 황순하 대표. 그가 보고 온 CES 독후감은 독특하다. “현대차의 진짜 적수는 도요타나 폭스바겐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LG화학이다.” 과거 휴대전화 업체들이 노키아가 아니라 의외의 복병인 애플의 아이폰에 쑥대밭 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지난 100년간 자동차가 연비·속도를 개선하는 기계공학에 치중했다면, 앞으로 100년은 IT와 케미컬(화학) 경쟁”이라 했다. 삼성과 LG의 센서와 제어기술, 2차 전지가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동차는 주로 도시간(between cities) 이동 수단이었다. 하지만 세계이동통신협회에 따르면 머지않아 도시내부(within city)의 편의 장치로 변모한다고 한다. 그날이 오면 자동차는 더 이상 개인이 소유해 차고에 넣어두는 상품이 아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네트워크를 통해 가장 가까운 소비자를 최적의 경로로 운반해 주는 IT 장치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 필요한 운영체계(OS) 등의 무인운행 시스템은 상용화를 코앞에 둔 수준이다.

 문제는 누가 이 생태계를 지배하느냐다. 구글은 무인자동차와 8곳의 택배 로봇 회사까지 인수했다. 아마존이 드론 택배에 뛰어든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새 네트워크를 장악하려는 포석이다. 언제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여기에 IT와 자동차를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지 모른다. 대기업만 죽을 쑨다고? 아니다. 수백만 명의 택시·버스·트럭 기사와 택배원들은 아예 생계를 잃을지 모른다.

 CES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휘는 디스플레이에 감탄했지만, 전문가들은 미래의 불길한 징조에 고민하는 눈치다. 이미 IT산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친 속도감과 극한의 경쟁에 단련돼 있다. 그런 IT계의 최강자인 구글과 아마존이 새로운 생태계를 앞세워 자동차 시장을 넘보고 있다. 한 외국 잡지는 “애플을 잊어라. 페이스북도 잊어라. 진짜 무서운 놈은 구글과 아마존”이라고 했다.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경고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