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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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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적 형상화가 무의식에 의해 비롯된다면, 무의식은 시적 형상을 변질시키는 「모티브」가 될 것이다. 무의식이 현실적 외형과 유기성을 가질 때 시인의 머리엔 「이미지」가 형상화되게 마련이지만 구태여 현실적 외형이란 조건이 없어도 시인은 무의식만으로도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의식이 현실과의 유기적 거리의 빈도를 없애고 무의식 자체가 현실 상황으로 토로되고 있을 때 그것은 참여론적 현실주의로 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시를 쓰는 심층 심리적 측면을 보면서 막연하게 구분해 본 것에 불과하다. 이달의 시를 읽으면서 그러한 가설을 생각하게 되었다.
문덕수의 『나그네』(한국문학), 김재원의 『그만둘까보다』(월간중앙), 낭승만의 『한 떨기』(월간문학) 등은 상기한 첫째, 둘째, 셋째의 경우에 해당하는 적절한 실례일 것 같다. 문덕수는 내면의식의 탐구로, 낭승만은 외적 현상과의 유기로, 김재원은 현실상황의 토로로 각기 판이하게 구분되는 것이 그것이다. 『나그네』는 자신의 내면의식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팬터지」를 구사한다.
「팬터지」는 역사적 신화성으로 귀납되어 「포이지」를 형성해내고 있다. 과거의 「선·공간」에서 보인 추상성이 신화적인 구상성을 드러내고 있는 점으로 그의 탈각의 자세를 분명히 보이고 있는 한 일례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심층 심리적 고찰로는 흥미를 갖게 하지만, 비약이 심하여 난삽한 감도 든다. 배경의 원천을 추구하면 지성적인 「리얼리티」도 음미해내 있을 것 같다.
근간 그가 즐기는 「스토리」성 구성의 묘도 곁들이고 있지만 과거보다 언어의 탄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인상도 없지 않다.
『한 떨기』는 한결같이 「리리시즘」의 흐름을 구사한 듯 하지만 현실과의 유기성을 살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나기 뚝뚝 떨어지는 가을날/아, 당신의 무릎에 피는/구름조각 꽃송이」 등의 비교적 조형적이라 할만한 구성은 현실과의 유기성을 살린 「이미지」가 되고있다.
그러나 재래의 안일한 낡은 감정이란 인상도 없지 않다. 이 시 자체로써는 간결성을 음미할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정서이므로 독자에게 「어필」해오는 점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일성을 탈피했을 때 기법 자체가 갖는 민감성은 막연히 넘길 수 없을 것이다.
『그만둘까보다』는 TV 장수무대를 소재로 한 것인데, 소재에 대한 불만은 없다. 이 같은 현실적 소재가 독자에게 주는 참신감은 다양한 실험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이 시의 나열적인 서술이 현실적 토로로 끈질기게 가지만, 기대했던 심도에 이르질 못한다. 그의 현실에 대한 직시적 취향이 과거보다 발랄성을 잃은 채 「슬럼프」에 빠진 듯한 감을 준다.
정진규의 『들판에 비인 집이로다』(문학사상)는 「톤」을 바탕한 정감을 드러내고 있는데, 현실과의 유기성을 살리는 쪽이다. 중첩된 「이미지」가 눈을 거스르게 한다.
「이미지」의 발전적 비약이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이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한 아쉬운 감을 남긴다. 그러나 비교적 자기 체취적이라 할만한 단독자적 정서의 호흡과 밀도가 고르게 안배된 시어의 일미를 느끼고 싶다.
양채영의 『안개 속 무엇이 하나』(심상), 감태준의 『겨울비』(월간문학), 정대구의 『겨울비가』(현대시학), 이성선의 『산적』(현대문학), 이기철의 『오점주의풍』(시문학), 등의 경우도 이 같은 관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양채영·정대구는 순수성을 바탕으로, 감태준·이성선은 현실과의 유기성으로, 이기철은 현실 토로에 가깝다는 인상이지만, 이들에 대한 「패턴」이 아직 분명히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계속 두고볼 문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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