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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상해임시정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만주에 있는 독립단체들은 그 근거지를 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제의 만주·몽고침략이 점차 노골화해가고 본격화해감에 따라 우리나라의 독립단체는 이들 일본 관헌과 일본의 압력을 받는 중국관헌의 눈길을 피해 근거지를 옮겨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삼부 대표들과의 접촉에 있어 여간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때는 벌써 동짓달 초순에 접어들어 영하20도의 강추위가 몰아쳤고「바닥눈」(내리는대로 녹지 않고 해동기까지 쌓이기 시작하는 눈)이 산야를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나는 복흥태의 성씨가 마련해준 썰매를 타고 인접지역인 화전·반석 등지를 다니며 독립투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길림에서 윤화전(복영)김응섭을 만난 데이어 화전지방의 독립운동 원로인 여시당(준 본명은 단현) 선생을 찾았다.
여씨는 정의부에서 경영하는「농민교과서 편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봉직중인 만주지방의 지도급 인사였다.
여씨에게 나의 신분과 소개장을 제시한 후 삼부통합문제와 유일 독립당의 결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여씨는 나에게 『삼부통합」은 기필코 성취해야될 명제이지만 새 기구의 구성을 둘러싸고 다소난관이 예상된다』면서 우선 당분간 농민교과서 편찬위원회 일을 보다가 통합『대회가 열리면「업저버」로 참석할 것을 권유했다.
이날부터 나는 편찬업무에 종사하면서 틈나는 대로 계명학원 강의록을 자습했다.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김승학(희산·삼의부수령) 타육천(백산·정의부군사위원강) 남자지(만주의 여자독립투사) 금리대 (정의부 총무위원장) 정신( 일우·신민부령수급인사) 유하영(월파·무정부주의자)등과 접촉하면서 통합을 역설하는 한편 상해에서 온 홍만호 정원호(상해주중음년회대표) 등과도 만나 촉성회 결성문제를 협의했다.
1927년 12월 초 길림현 신한촌에서 마침내 부통합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 대회는 정의부안의 자제분열로 수일간을 두고 갑론을박만을 되풀이하다가 아무런 결론없이 끝나고 말았다.
세칭「족성회」파와 「협의회」파의 대립으로 발생한 이 싸움은 족성회측이 『각 단체를 통합하여 당을 만들어 최고지도기관으로 하고 그 밑에 민치기관과 군무기관을 두자』는 주장임에 반해 협의회측은 『아직 그러한 당 체제는 시기상조이니 협의체를 만들어 군·민통치 방안을 합의하고 당의결성은 물론 삼부의 해체마저 보류하자』고 맞섰다.
족성회측은 지청천 김동삼 계관일을 대표로 신민부의 김좌진 황학수·정신과 삼의부의 김승학 김벌하 이창직이 이를 지지했고 나와 홍만호도 이에 적극적으로 찬성의 뜻을 표했다. 반면 협의회측은 정의부의금리대 현탄철(묵관) 고활신현정경(하죽)둥을 대표로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동조했다.
이같이 정의부안의 분열로 삼부통합운동이 지리멸렬 상태에 빠지게 되자 당분간 두파의 의견합일이 이뤄질 때까지 대회를 정지하자는 의견이 나와 결국 3개월만에 무기정회형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만주특파정치원으로서의 임무수행을 본의는 아니나 충실히 이행치 못하고 북경으로 되돌아 왔다.
28년 3월 길림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나는 중단한 학업을 계속키 위해 다시 계명학원의 유원장을 찾았다.
작년 말 시험을 치르지 않았던 관계로 신학기의 수학여부를 타진하니 유원장은 『시험을 안 치르고 진학은 할 수 없으나 당신의 경우는 특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상학기 시험이나 잘 보라』고 격려했다.
유원장은 『공부는 시기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무한한 혁명공작 때문에 수업기회를 희생시킬 수 없으니 금년 1년만은 수업에 전념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이어 유원장은 학비와 숙식은 물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학원기숙사로 옮기도록 했다. 유원장의 이 같은 특별한 배려에 힘입어 나는 그해 학기에 우등을 했으며 다만 외국어 성적만이 다소 불만스러울 정도였다.
이 기간동안은 비교적 나 자신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있고 해서 틈나는 대로 북경교외의 여러 고적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좋아하던 시작 공부도 간간이 했다.
학원으로 되돌아온 지 어언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만주의 동지들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삼부통합의 실패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예견돼 왔던 불길한 사태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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