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가시'가 된 장밋빛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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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25일 발표 됐다. 7년째 2만 달러대인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러대로 높이는 목표를 담고 있다. 성장이 정부 핵심 과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자칫하면 3개년 계획이 또 다른 규제 양산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코드 맞추기→청부 입법→속도전식 입안’이라는 규제 신설의 방정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사는 소비자와 생산업체에 메가톤급 파문을 미치지만 브레이크 없이 달려가고 있는 ‘저탄소차협력금’ 규제의 생성 과정을 추적했다.

2009년 7월 6일. 4차 녹색성장위원회가 열렸다. 청와대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녹색성장’은 MB의 간판 정책이었다. 이날 주요 안건은 자동차 연비 기준을 미국 수준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연비 규제는 글로벌 표준이고, 선진국에 차를 팔려면 국내 업체도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환경부는 여기에 엉뚱한 이중 규제를 추가했다. 정부가 차 값에 직접 개입해 소비자 선택을 바꿔보겠다는 발상이었다.

 저탄소차협력금 규제 신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제도는 탄소 배출이 많은 차에 부담금을, 적으면 보조금을 준다. 현재 안대로 하면 쏘나타를 사면 150만원, 싼타페는 100만원(2017년 기준)을 추가로 내야 한다. 엑센트·모닝 등 소형 차도 차 값에 25만~50만원을 더 내야 살 수 있다. 보조금을 받는 차는 대부분 수입차여서 “국산차 소비자가 수입차 구매자 배를 불리는 꼴”이란 반발도 나온다. 또 규제는 정부가 만들고 돈은 업체가 거둬야 한다.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불법 보조금이 판치는 휴대전화 시장처럼 자동차 시장도 혼탁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런 우려에도 이 규제는 제동 없이 시행일(2015년)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규제 신설 방정식에 따라 탄탄한 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녹색위에서 시작된 이 규제는 2012년 8월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의 발의(대기환경보전법)로 법률화됐다. 같은 해 11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사실상 이 법안은 정부 법안 아닙니까.”(김성태 소위원장) “정부 법안으로 나왔는데 중간에 업자하고 절충은 내가 다 했어요.”(최 의원) 국회의원을 통해 이렇게 ‘청부 입법’을 하면 정부 부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영향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한번 속도가 붙자 규제 입안은 쏜살같이 진행됐다. 2012년 3월 환경부 초안의 최대 부담금은 150만원이었다. 5개월 후 이 금액은 300만원으로 높아졌다. 지금은 시행이 연기됐다는 이유로 최대 700만원까지 올라간 상태다. 환경부는 간담회·공청회를 통해 협의한 내용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2012년 11월 ‘요구사항 반영’을 전제로 반대 활동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가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은 소리 없이 2013년 3월 국회를 통과했다. 게다가 환경부는 법도 통과되기 전에 2013년 예산안에 관련 예산 1515억원을 반영하려고 했다. 당시 국회 환노위 예산안 검토보고서는 “도입도 안 된 제도에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국회를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정의 효율적 운영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벤치마킹했다는 프랑스 사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자동차 업체가 있는 나라 중 이 규제를 하는 나라는 프랑스뿐이다. 환경부는 프랑스에서 2008년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탄소 배출이 적은 차의 판매 비중이 2007년 51%에서 2011년 81%로 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럽연합(EU) 통계 등에 따르면 프랑스의 소형차 비중은 31.9%(2007년)→41.2%(2010년)→33.6%(2012년)로 변했다.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것이다.

 규제에 익숙한 정부 부처의 일사천리 규제 신설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건 대통령뿐이다. 그나마 이 제도 시행이 1년6개월 늦춰진 것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작용을 우려해 보류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제대로 되려면 우회 입법 등 규제 신설 과정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며 “자칫하면 3개년 계획도 내수를 위해 수출 기업을 역차별하는 규제 신설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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