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수 올렸더니 … 대박난 주유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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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평동 양평주유소는 지난해 6월 지하 1층, 지상 5층의 빌딩형 주유소로 변신했다. 한 달 임대소득만 1억원을 올리는 알짜배기 주유소가 됐다. [사진 SK에너지]

“주유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12년 9월. 부산에서 주유소 13곳을 운영하고 있는 박현병(68) 동방석유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부산시내 한복판에 있는 ‘형제주유소’ 때문이었다. 한때는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는 주유소였지만 2000년 이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손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알짜배기 땅에 차라리 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들 했다. 주유소를 포기할 순 없어 고민 끝에 4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기로 했다. 1층엔 주유소를 하되, 2층은 임대를 주는 형식이었다. 건물 준공 후, 그의 아이디어는 소위 ‘대박’이 났다. 매달 2500만원에 달하는 월세가 들어오기 시작한 데다 주유를 하러 온 손님도 두 배나 늘었다. 문영진 동방석유 이사는 “운영 중인 다른 주유소도 건물로 전환해 1층엔 주유소, 다른 층엔 점포 임대를 할 수 있도록 바꿔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유소들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 주유소 사업이 ‘서비스업’이었다면 최근 들어선 ‘임대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 받는’ 주유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5일 SK에너지에 따르면 올 초 기준 형제주유소처럼 임대료를 받는 ‘빌딩형 주유소’는 전국 24곳에 달한다.

 이들 업체의 평균 매출 증가율은 30%로, 월 평균 1000만원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는 2010년 1만3004개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숫자가 줄고 있다. 경쟁 심화로 폐업 주유소는 2011년 188개에서 2012년엔 219개, 지난해엔 310개를 기록했다. 1969년 국내 최초로 세워졌던 현대식 주유소인 홍대 앞 ‘청기와 주유소’는 물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재난대책본부가 차려졌던 삼풍주유소도 사라졌다. 주유소를 운영해 남는 수익이 오피스텔을 지어 운영하는 것보다 못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국내 최초 빌딩형 주유소는 2007년 생겨났다. 주유소 운영업체인 서울석유는 서울 장충주유소 자리를 ‘주유소+일반 빌딩’ 형태의 복합건물로 세웠다. 1층에 주유소를 넣고 그 위는 주차장 공간으로 삼고 4층부터 본사 사무실로 쓸 수 있게 아이디어를 냈다.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또 다른 주유소 운영회사인 한유그룹으로 2009년 그룹 사옥을 서울 봉천동에 지으면서 1층에 주유소를 설계해 넣었다. 이를 눈여겨본 SK에너지는 월세도 받고 주유소도 할 수 있는 ‘빌딩형 주유소’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기존 정유업체들이 주유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유소 옆에 빵집이나 편의점, 커피전문점을 유치했던 데서 나아가 건물신축 컨설팅을 해주기로 한 것이다.

 SK에너지는 양평주유소를 시험대로 삼았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양평주유소는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 바뀌었다. 1층은 주유소와 맥도날드, 2층엔 옷가게, 피자가게, 3층에서 5층엔 일반 사무실로 세를 놨다. 한 달에 들어오는 월세 수입은 약 1억원. 유평수 SK에너지 양평주유소 사장은 “건물을 짓기 전엔 한달 34만L의 기름을 팔았지만 지금은 매출이 두 배로 늘어 68만L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유소 위에 먹을 곳, 일터, 쇼핑할 곳 등이 생기면서 고객들이 머무르는 시간이 늘고, 자연스럽게 기름 판매도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SK에너지는 양평주유소와 형제주유소 등의 성공을 바탕으로 전국 4000여 개 주유소 전체에 ‘복합화’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건물 공사비 등 자금 지원과 임대 수익률 컨설팅 등을 제공해 위기에 놓인 주유소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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