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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지키기엔 찰떡 궁합인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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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화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공천폐지’라는 대선공약을 내걸었다가 최근 백지화했다. 곰곰이 따져보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만 이득을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공약을 깔아뭉개긴 뭣 했던지 지난 18일 ‘상향식 공천’이란 대안을 발표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줄 정치혁명이자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뛰어넘는 개혁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말이 달라졌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25일 상향식 공천 관련 당헌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전국위원회에 “후보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는 지역도 우선공천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개정안을 제출했다. 말이 우선공천이지 기존처럼 당 지도부가 내려꽂는 전략공천이나 같은 내용이다. 새누리당이 일주일 전 발표한 내용에는 우선공천이 여성·장애인을 배려하기 위한 예외 조항에 불과했지만 막판에 지도부의 개입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터져 나왔다. 두 번이나 낙천 경험을 한 김무성 의원은 “다시는 (지도부가) 전략공천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악용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최종 통과된 당헌엔 “여론조사 등을 참작해 우선공천 지역을 정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야 경쟁력이 없다고 판정할 수 있는지 애매한 건 여전하다.

 당 지도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했다. 호남 등 약세지역에 새누리당 후보가 아예 나서지 않거나 후보자가 있어도 경쟁력이 없다면 명망가를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당헌당규특위 위원장인 이한구 의원도 “현실적 가능성 때문에 우선공천 기준이 확대됐다”면서도 “당헌에 상향식 공천을 전제했기 때문에 공천혁명의 의미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비주류 인사는 “기존 당헌도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럴 바엔 달라진 게 뭐냐”고 투덜댔다.

 새누리당에 조그만 흠집만 생겨도 대대적으로 공세를 펴던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당헌 개정 논란을 애써 외면한 것도 웃긴다. 민주당은 이날 아무런 비판 논평도 내지 않았다. 기초선거 공천폐지 약속을 지키라며 장외투쟁까지 벌이던 기세는 온데간데없다. 민주당도 기초선거 공천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이 정당공천을 폐지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역시 제1야당은 새 정치를 외치는 1인 정당(안철수 신당)과 달랐다”며 민주당을 치켜세웠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대목에선 이렇듯 찰떡 궁합이다.

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