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236>'중국판 애플' 샤오미 창업자 레이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신경진
국제부문·중국연구소 기자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 중국어로 좁쌀을 뜻하는 샤오미테크(小米科技)를 창업한 레이쥔(雷軍·45)의 지론이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아니다.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 회사다. 레이쥔의 꿈은 모바일이란 태풍에 올라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대만과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세계 시장에도 진출했다.

샤오미는 모바일 인터넷 회사

휴고 바라(40·오른쪽) 전 구글 부회장이 샤오미 글로벌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샤오미3 발표회에서 바라가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이매진차이나]

“듣자니 좁쌀이 이미 큰 쌀이 됐다더군요.”

 지난 1월 17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레이쥔에게 건넨 말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각 방면의 전문가·학자·기업가가 초대됐다.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발표할 시정방침인 ‘정부공작보고’에 담을 의견과 건의를 청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샤오미는 이미 총리의 자랑이었다.

 레이쥔과 리커창 총리는 모바일 인터넷에 푹 빠져 있다. “인터넷을 국가전략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총리에게 건의했다. 모바일 인터넷이란 태풍의 길목(颱風口)을 활용하면 전통산업의 업그레이드를 촉진할 수 있다.” 레이쥔이 총리에게 한 말이다. 그는 간담회 다음 날 기자들을 만나 “리커창 총리는 모바일 인터넷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좌담회에서 발언 기회가 주어진 기업가 네 명 중 절반이 인터넷 기업가였다. 텅쉰(騰訊)의 마화텅(馬化騰) 회장은 “모바일 인터넷은 이미 인체의 한 기관이 됐다”고 말했다.

 기성 제품을 뒤집는 전복(顚覆)형 이노베이션이 레이쥔의 특기다. “샤오미는 전복형 창신의 결과다. 타인의 생각과 관점을 긍정적으로 전복했다.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비방과 모독, 연모와 질시가 따라온다. 남이 뭐라 생각하건 내 일을 잘하면 그뿐이다.” 중국 중앙방송(CC-TV) 기자가 ‘샤오미가 아이폰을 베낀 것 아니냐’고 묻자 레이쥔이 내놓은 답이다.

 레이쥔도 짝퉁을 경멸한다. 그는 총리 간담회에서 샤오미가 짝퉁 휴대전화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시장에서 팔리는 샤오미의 절반은 가짜이며, 일부 성(省)에서는 가짜 휴대전화 생산이 국내총생산(GDP)에 상당 부분 기여할 정도라고 총리에게 말했다. 정부가 시장 감독을 강화해 품질이 떨어지는 짝퉁을 퇴치해줄 것을 건의했다.

 레이쥔의 별명은 ‘레이잡스(중국의 스티브 잡스)’다.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신제품 설명회 자리에 즐겨 나선다. 레이쥔은 자신만의 ‘스티브 잡스관(觀)’을 갖고 있다. “인류는 영원한 것을 원한다. 영원한 것은 진·선·미다. 잡스는 아름다움을 숭상했다. 그는 IT제품에 아름다움을 체현했다. 아름다운 물건은 영원하다. 잡스가 추구한 디자인의 메시지다.” 레이쥔의 깨달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0년 7월 그는 “수술용 메스로 자신을 해부해 얻은 결과”라며 다섯 가지 깨달음(5개조)을 말했다. “첫째, 세상의 순리를 깨닫고 행동한다. 절대 하늘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는다. 둘째, (기존 질서를) 뒤집어엎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진정한 인터넷 정신에 입각해 다시 생각한다. 셋째, 사람의 욕구가 하늘의 이치다. 넷째, 널리 좋은 인연을 맺는다. 다섯째, 적은 것이 결국 많은 것이다(롱테일 경제학 논리다).” 레이쥔의 철학은 제조업 시대의 경제 논리를 뒤집는다. 그는 ‘웹 2.0’ 정신을 추종한다. ‘중국=세계의 공장’식 사고로는 레이쥔의 경영철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샤오미의 3대 비즈니스 핵심도 제시했다. ▶팬덤(fandom·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문화를 깊이 개발해 경영한다. ▶인터넷 정신과 방법을 최대한 구현한다. ▶끊임없이 고객의 기대를 초월한다. 샤오미의 모토는 ‘매니어로 산다(爲發燒而生)’다. 인터넷 회사답게 영문 카피는 집단지성에 의뢰했다. ‘당신에게 불탔고, 샤오미(자신)에 불탄다(Burn for You,Burn for MI)’가 당선됐다.

샤오미 탄생까지

샤오미 스마트폰은 고성능 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했다. 샤오미테크 창업자 레이쥔(雷軍·45)이 2011년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개최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베이징 콘퍼런스’에서 자사의 첫 스마트폰 출시를 앞두고 저가 전략을 채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후베이(湖北) 출신인 레이쥔은 1987년 우한대학 계산기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전 세계 모든 컴퓨터에 설치되는 꿈을 키웠다. 92년 동료들과 낸 『심화DOS프로그래밍』은 당시 개발자의 필독서가 됐다.

 90년 여름 친구 3명과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SUNSIR(三色)였다. 빨강·노랑·파랑 삼원색이 어울려 모든 색을 만들 듯이 신세계를 꿈꿨다. 동업한 네 명은 무일푼이었다. 투자도 없었다. 레이쥔이 첫 계약을 따왔다. 수천 위안을 벌었다. 시작이었다. 대학 근처 허름한 호텔을 빌려 사무실로 이용했다. 낮에는 마케팅, 밤에는 개발에 매진했다. 네 명 모두 밤에도 기숙사로 돌아갈 줄 몰랐다. 사무실서 쪽잠을 잤다. 첫 제품으로 중국어를 구현하는 PC카드를 제작했다. 며칠 뒤 기술을 도용당했다. 값싼 복제품이 쏟아졌다. 한 푼도 벌지 못했다. 레이쥔은 훗날을 기약하며 회사를 떠났다.

 92년 레이쥔은 베이징으로 상경했다. 진산(金山·킹소프트) 경영진으로 합류했다. 진산은 중국산 소프트웨어의 선도적 기업이었다. 진산의 핵심 상품은 WPS(워드프로세스)였다. 96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중국 시장에 진출해 오피스(Office) 중문판을 출시했다. ‘앞에는 MS, 뒤에는 불법 복제’의 협공에 빠졌다. 27세의 레이쥔은 WPS를 고집했다. 그의 결정은 진산이 만든 츠바(詞覇·전자사전 프로그램), 두바(毒覇·백신 프로그램), 게임에서 번 돈을 WPS에 몽땅 쏟아붓게 만들었다. “98년 텅쉰이 나오고, 99년 리옌훙(李彦宏)이 바이두를 만들었고, 99년말에는 알리바바가 태어났다. 우리는 WPS만 고집했다. 인터넷의 전모를 잘못 이해했다.” 레이쥔의 고백이다.

 진산은 2007년 뒤늦게 상장에 성공했다. 동시에 레이쥔은 건강을 이유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만일 WPS를 고집하지 않았더라면’이란 문제를 놓고 복기를 거듭했다.” 레이쥔은 당시 “대세를 따르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대세는 인터넷이었다. 당시 레이쥔은 지고도 승복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간다면 결코 똑같은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레이쥔의 이후 행보는 성과가 좋았다. 1999년 창업한 쇼핑몰 줘웨(卓越)를 아마존에 매각해 현금을 챙겼다. 진산 상장과 에인절 투자도 짭짤했다.

샤오미를 세우다

샤오미 2S

 불혹을 넘긴 레이쥔은 2010년 새 출발을 선언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인터넷과 휴대전화에서 미래를 봤다. 휴대전화가 컴퓨터화·인터넷화·올인원 추세로 갈 것임을 예측했다. 휴대전화가 기존 전자제품과 달리 감정을 가진 인격화된 기계가 될 것으로 봤다. 뜻을 같이하는 7인의 전사를 모았다. 외부 투자금도 확보했다.

 샤오미의 로고 ‘MI’는 Mobile Internet의 약자다. ‘Mission Impossible’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끝없이 불가능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로고를 뒤집으면 마음 심(心)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마음 심 자에서 점이 하나 없다. 이용자들에게 불편함을 덜어주고자 점 하나를 뺐다. 고객 지상주의가 샤오미의 철학이다.

 창업 초 1년 반 동안 레이쥔은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 제품의 품질 향상에 모든 정력을 쏟아부었다. 첫 실적은 참담했다. 첫 2개월 동안 이용자 100명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인터넷 기업으로 첫 성적은 무척 창피했다.” 이 100명을 감격시키기 위해 고객 이름을 회사 컴퓨터 시작화면에 적어넣고 회사 주소록에 추가했다. 광고비도 쓰지 않고, 영업망도 두지 않았다. 준비된 수량만 특정 시간에 온라인으로만 판매했다. 대신 레이쥔은 제품과 고객에게 심혈을 기울였다. 사용자와의 소통에 모든 것을 걸었다.

 기적이 발생했다. 고객이 첫 주 100명, 둘째 주 200명, 셋째 주 400명, 다섯째 주 800명으로 늘었다. 2013년 샤오미는 휴대전화 1870만 대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160% 증가한 수치다. 12월 한 달 동안 322만5000대를 팔았다. 2014년 판매 목표는 4000만 대다.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총명한 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천하무적이다. 마흔이 되어 깨달은 것은 1%의 영감이 99%의 땀을 능가한다는 사실이다. 주류 교육은 모두 부지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근면은 기본이다. 핵심은 대세를 파악하는 데 있다.” 샤오미 성공 이후 레이쥔의 소감이다.

휴고 바라와 ‘모바일 차이나’를 꿈꾸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사단을 지휘했던 휴고 바라(40)가 지난해 구글을 떠나 샤오미에 합류했다. 그는 12월 프랑스에서 열린 웹테크(Web Tech) 콘퍼런스에 참가했다. 두 달 동안 중국에서의 경험을 말했다. 돼지도 하늘을 날게 만드는 태풍이 중국에 불고 있다고 말했다. 샤오미가 꿈꾸는 모바일 차이나가 미래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 발언의 요지였다.

 중국에선 인터넷 사용자 6억 명, 한 달에 한 번 이상 접속하는 회원이 QZone 6억300만, qq 5억, Wechat 2억7100만 명이다. 쇼핑몰 타오바오는 아마존과 eBay를 합한 것보다 매출이 2배 많다. 싱글데이(11월 11일)에 미국의 사이버 먼데이 매출액 20억 달러의 2배가 넘는 57억5000만 달러를 판매했다. 모바일 천국 중국을 휴고 바라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레이쥔과 휴고 바라 콤비는 새로운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었다. 패스트 팔로어의 시대도 끝나간다.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꿨던 20대 레이쥔도 더 이상 없다. 레이쥔은 홍콩 봉황망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레이잡스라는 별명이 싫다. 샤오미는 이미 애플·구글·아마존을 합한 회사다.”

신경진 국제부문·중국연구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