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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마다 타이어 1만5000개가 거쳐가는 이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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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일본 홋카이도 시베쓰에 자리 잡은 브리지스톤 타이어의 비탈길 성능시험장에서 지난 12일 다양한 차량들이 스노 타이어 성능 시험을 하고 있다. 이 시험장에는 경사도가 3.5~14도에 이르는 7개의 다양한 눈길 경사로 코스가 있다. 브리지스톤은 전세계에서 11개의 성능시험장을 운영한다. [사진 브리지스톤]

안전을 위해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한다는 설명은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급제동을 하면 차가 확 돌지 않을까 내심 불안했다. 차도는 눈길, 그것도 반들반들 다져진 빙판에 가까웠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가 돌지는 않았지만 ‘크르륵’ 하는 마찰음과 함께 약 12m를 가서야 멈춰섰다. 눈길 운전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행한 차량에는 브리지스톤의 신형 스노 타이어 ‘블리작 VRX’가 달려 있었다. 이 회사의 기존 제품이 장착된 차량을 타고 두 번째 주행에 나섰다. 두 번째 급제동에선 처음보다 2m가량을 더 가서 멈췄다. “그 사이에 사람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브리지스톤 타이어 개발부의 하야시 도루 엔지니어는 “새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제동 성능이 10%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12일 찾은 일본 홋카이도 시베쓰(士別)의 브리지스톤 성능시험장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장이었다. 도쿄돔의 47배(236만㎡) 면적인 이 시험장엔 세 가지가 없었다. 눈이 쌓이지 않은 맨땅이 없었고, 차를 보호할 방호벽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엔 포기가 없었다. 안도 요시히사 과장은 “매년 겨울 연인원 1000명이 1만5000개 타이어의 성능을 시험한다”며 “만족할 때까지 야간 주행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험장은 산기슭을 따라 난 눈길 주행로 3곳(총 5㎞)과 직선 주행로 3곳(총 3㎞), 원형의 선회 주행로 등을 갖추고 있다. 빙판 주행로도 별도로 조성돼 있다. 실제 도로처럼 눈과 바람을 맞는 실외 빙판과 100% 순도의 실내 얼음판을 각각 갖췄다. 비탈길 상황을 반영한 눈길 경사로 7곳(3.5~14도)까지 있다. 안도 과장은 “직접 운전하면서 고객 눈높이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시험장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했다.

 스노 타이어의 승부는 아주 작은 것, 바로 고무에 있는 미세한 기포와 타이어 접지면의 홈에서 갈린다. 브리지스톤의 스노 타이어는 발포 고무로 만든다. 수많은 ‘공기 방(Cell)’이 타이어가 땅에 닿을 때 바닥의 물을 흡수해 튕겨내는 기능을 한다. 빙판 위의 얇은 수막을 줄일수록 타이어는 땅에 더 밀착한다. 하야시 엔지니어는 “기포는 타이어가 딱딱해지는 것을 막기 때문에 ‘블리작 VRX’는 4년이 지나도 성능에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타이어 표면의 홈도 아무렇게나 그어져 있는 게 아니다. 눈을 얼마나 콱 움켜쥐느냐는 홈이 어떤 형태로 교차하고 배열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대체로 비대칭일 때 효과가 높다. 브리지스톤은 최적의 패턴을 찾기 위해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다.

 이런 개발 과정은 결국 시간과 돈 싸움이다. 세계 타이어시장 매출 1위인 브리지스톤은 일본 기업 특유의 끈기와 집요함까지 갖췄다. 브리지스톤은 ‘적자가 나도 매출의 3%는 연구개발에 쓴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세계 5곳의 기술센터, 11곳의 성능시험장에서 지역 맞춤형 제품을 개발한다. 한국·러시아에선 습기가 많은 눈에 적합한 스노 타이어를 내놓는 식이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해 영업이익(4831억 엔)이 2012년보다 53%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시마부쿠루 데쓰야 한국지사장은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 기술력을 널리 알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베추(일본)=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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