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노 담화 부정하면 한·일 관계 파탄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공식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0일 국회 답변에서 고노 담화의 근거가 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에 대해 “학술적 관점에서 더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전문가 팀을 만들어 검증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나열해 일본을 비방중상하는 것에는 사실을 가지고 냉정하게 반론하겠다”고 밝힌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1993년 8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의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명의로 발표된 담화에서 일 정부는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책임을 인정했다. 또 16명의 위안부 피해자를 닷새간 서울에서 만나 면담한 결과를 토대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감언과 강압에 의해 모집·이송·관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시인했다.

 하지만 일본 내 일부 우익 진영은 일본군의 책임을 입증하는 공문서가 존재하지 않으며, 피해자들의 증언이 부정확하고 모호하다며 고노 담화의 정당성에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일부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퇴행적 주장에 편승해 아베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증언의 신빙성을 전문가를 통해 검증하겠다는 것은 피해자들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 비(非)인도적이고 몰염치한 발상이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함께 고노 담화는 한·일 관계를 떠받쳐 온 두 기둥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며 무라야마 담화에 의문을 제기한 데 이어 고노 담화마저 흔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아베 내각의 공식 입장과도 배치되는 반(反)역사적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고노 담화의 부정은 한·일 관계의 파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베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