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올려야 되지 않겠소? 도전 받는 옐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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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옐런(左), 피셔(右)

재닛 옐런의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심상찮다. 19일(현지시간) 공개된 지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이 그 단초다. 당시 FOMC는 8년간의 연준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벤 버냉키가 주재한 마지막 회의였고, 옐런을 차기 의장으로 맞이하는 첫 회의였다. 버냉키는 만장일치로 양적완화 축소(월 750억 달러→월 650억 달러)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회의장 풍경은 축제와 거리가 멀었다. 통화량 확대를 주장하는 비둘기파와 통화 긴축을 요구하는 매파 간 힘겨루기가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급기야 버냉키가 꼭꼭 닫아둔 기준금리 인상의 봉인(封印)이 풀렸다. 회의록은 “몇몇 참석자들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relatively soon)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그중 일부는 올해 중반 전에 금리를 올릴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매파들의 금리인상 시도는 아직 경기 회복이 완전치 않다는 비둘기파들의 반대에 부닥쳐 수포로 돌아갔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매파들로선 얻은 것이 적지 않다. FOMC 회의록은 대중들에게 몇 달 혹은 몇 분기 앞 상황을 예고하는 효과가 있다. 금리를 올리자는 말은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금기시됐던 얘기다. 그러나 일단 FOMC 테이블에 오른 이상 앞으론 회의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메뉴가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금리인상 시기가 당초 예상했던 2015년 중반보다 앞당겨질 수도 있다.

 버냉키 통화정책의 근간이었던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도 수술대에 올랐다. 버냉키는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에 통화정책을 연동시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선 선제적 안내에 대한 그동안의 합의가 깨졌다. 누구는 현행 특정 수치 제시 방식을 고수하자고 주장했고, 누구는 고정 불변의 목표수치를 배제하고 여러 정보를 종합 고려하는 ‘질적’ 접근으로 바꾸자고 고집했다. 일부에선 금융안정성, 물가상승률 등을 강조하자고 했다. 한마디로 백가쟁명이었다. 금리인상의 기준선으로 삼아온 실업률이 이미 6.6%로 목표치 6.5%에 근접한 게 계기가 됐지만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에 내재돼 온 불협화음이 수면 위로 불거져 나온 셈이다.

 월가에선 선제적 안내의 향후 개편엔 스탠리 피셔 부의장 지명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내다본다. 피셔는 통화정책은 상황에 따라 유연해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만큼 버냉키식 선제적 안내에 비판적이었다. 그 자신이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시절 양적완화를 한발 앞서 밀어붙이고 가장 먼저 금리를 올려 이스라엘 경제를 연착륙시킨 경험이 있다. 피셔는 상원 인준절차가 끝나지 않아 아직 FOMC에 합류하지 않고 있다. 그의 가세는 매파의 결속력을 더 강하게 할 전망이다.

 이날 FOMC 회의가 난상토론으로 흐른 데는 매파 위원들의 증가와 무관치 않다. 지난달 FOMC 위원 10명 가운데 리처드 피셔(댈러스)·샌드라 피아날토(클리블랜드)·찰스 플로서(필라델피아) 등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3명과 제러미 스타인 연준 이사 등 4명이 매파 성향이다. 정작 옐런 의장은 비둘기파의 대모다.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어지간한 인플레이션은 견뎌야 한다고 믿는 양적완화의 어머니다. 그러나 버냉키는 떠났고 그의 주변엔 매파들이 잔뜩 기세를 올리고 있다. 시장은 FOMC에서 금리인상이 제기됐다는 소식만으로도 출렁였다. 다우지수가 0.56% 내린 것을 비롯해 주요 지수가 모두 빠졌다. 시장은 옐런이 금리인상에 안달이 난 매파들을 어떻게 다독여 나갈지 주목하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어떤 방향으로 조정할지 미리 알려주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걸 말한다. 금리 변화로 시장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중앙은행이 시장과 소통하는 방법의 하나다. ‘실업률이 얼마, 성장률이 얼마 되면 금리를 올리겠다’는 식으로 기준선을 제시하는 게 선제적 안내의 대표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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