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리는 친구에 "관심 고마워" 하라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야, 넌 왜 그렇게 못생겼니?”(A학생) “안녕! 나한테 관심 가져 줘서 고마워.”(B학생)

 호주 빅토리아주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컴백스(Comebacks·대꾸)’ 훈련의 일부다. 호주의 초· 중·고교 과정에선 이처럼 재치 있는 답변을 통해 상처 주는 말을 받아 넘기는 언어 표현을 학생에게 가르친다. ‘왕따(집단 따돌림)’ 등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교육부는 20일 호주의 컴백스를 벤치마킹한 ‘방패말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김영진 학교폭력대책과장은 “학생 본인을 괴롭히거나 친구를 놀리는 말을 재치 있게 넘기고, 폭력적인 상황에 즉시 대처할 수 있는 구체적인 표현을 보급하겠다”며 “상반기 중 상황별 대응 표현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 초·중·고교별로 매뉴얼을 제작하고, 각종 교사 연수를 통해 보급할 계획이다.

 ‘방패말 프로젝트’는 전반적인 학교 폭력은 줄지만 언어폭력·욕설은 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교육부가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가장 많았던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35.3%)이었다.

 국민대 류성창(교육학) 교수에 따르면 2000년대 말부터 호주 학교들은 개별적으로 컴백스를 교육했다. 공격적이고 모욕적인 말에 대해 상황에 따라 ▶상대방을 오히려 칭찬하기 ▶동의하면서 자기를 낮추기 ▶과장해 동의하기 ▶주제 바꾸기 등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흡연·마약을 권하는 친구에게 거절하는 답변도 가르친다. 류 교수는 “컴백스 덕에 학교폭력 피해가 줄고 학생의 대화 능력이 향상됐다는 사례 보고가 이어지자 호주 정부가 직접 나서 온라인 등을 통해 컴백스를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한국서도 통할까”=현장 상담 전문가, 교사들은 “취지는 좋지만 한국에선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건찬 학교폭력예방센터 상임대표는 “논리적인 대화, 농담에 익숙한 서구와 달리 우리 청소년은 순간적인 대화법에 익숙한 편”이라며 “우리 학교 현실에선 체계적인 교육이 쉽지 않아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쓰면 되레 놀림감이 되거나 상대방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생활지도 교사 출신인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언어 표현을 배우고 익히는 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학교들이 그만큼의 지속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초등생에겐 도움 될지 몰라도 이미 언어 습관이 굳어진 중·고등학생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예방 차원에선 일부 효과가 기대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폭력TF에서 일했던 서울 천호중 송형호 교사는 “놀림이 시작됐을 때 어쩔 줄 몰라 침묵하다가 결국 반 전체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이 꽤 많다”며 “그런 애들에겐 대응력을 키우는 데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김 과장은 “호주도 지역·문화에 따라 학교별로 다른 컴백스를 교육한다”며 “우리 청소년 문화와 학교 상황에 맞게 방패말 매뉴얼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인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