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개혁바람 일 미 의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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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11월의 미국중간선거 결과 등장한 「새로운 얼굴」들이 미 의회에 조용한 개혁의 바람을 불러올 것 같다. 진보적인 경향을 대변하는 이들 개혁파가 의회의 주류로 형성된다면 남미·「아시아」의 인권억압국가들에 대한 외원삭감 혹은 중단조치 등 의회의 압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12월초부터 열린 미 민주당하원의원총회는 의회의 개혁과 직결될 몇 가지 중요한 절차상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거의가 진보파인 75명의 「새얼굴」들과 재선된 의원 등 2백92명의 민주당하원의원이 참석한 총회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지금까지 하원세출위 소속의원들이 갖고있던 분과위의원배정권을 당기구인 정책운영위로 이양하고 27명의 세출위원을 35명으로 늘리는 한편 세출위의 권한을 축소했다. 새로 증원된 자리는 주로 소장진보파의원들로 채우게 될 것이다.
▲하원분과위원장선임에 「고참제」를 제한했다. 지금까지 미 의회에서는 고참의원이 분과위원장·특별위원장·상하합동분과위원장직을 2, 3개씩 독점, 일종의 「봉건제」와 같은 피라미드식 위계를 형성해 왔었다.
이 고참제의 전형적인 인물로 「윌버·밀즈」세출위원장과 금융통화위원장 「라이트·패트먼」이 꼽히고 있다.
「스트립·댄서」와의 구설수로 고전하고 있는 「밀즈」의원은 차기의회에서 상하합동 내국세위의 위원장을 겸직하게 되어있었다.
금년 81세의 「패트먼」의원은 의원생활 46년 동안 12년간을 금통위원장으로 지내 왔는데 그는 또 상하합동경제위의 위원장이기도 하다.
고참우선제 제한조치를 제안한 워싱턴주 출신 「로이드·미즈」의원은 『위원장 배지를 여러 개씩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것을 폐지하고 소장·중견의원이 특별위나 소위의 위원장에 도전할 기회를 줌으로써 의원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의원총회는 또 당지도권을 강화했다. 종래에는 「앨버트」하원의장·「오닐」원내총무가 부총무와 하원운영위원을 지명해왔는데 일부의원들이 당지도권에 도전, 부총무를 선거제로 선출하자는 동의안을 냈으나 의장권한 확대를 개혁의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고있는 진보파의 반대에 부닥쳐 1백32대 38로 부결되었다.
의장·원내총무·부총무로 이루어지는 민주당지도부의 권한확대는 지금까지 정부측과 사전타협으로 정부측의 제안을 기다릴 뿐 의회자체의 법안발의를 하지 않던 과거의 관례를 지양하여 민주당의 입법안을 보다 손쉽게 의회에 낼 수 있는 이점을 갖게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포드」대통령의 경제시책에 대해 민주당이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가 있게된다. 민주당 하원의원 총회는 내년 초에야 완전히 끝나겠지만 고참제 제한과 당지도권 강화라는 결과만으로도 민주당이 3분의2선을 넘는 하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각 분과위소속의원이 자기들의 이익만 추구하여 당정책과 위배되더라도 미 의회의 전통으로 보아 당지도부가 이들을 규제할 수 없다
또 민주당의원총회의 전체분위기는 진보적이지만 보수적인 남부출신의원들이 공화당과 합세할 경우 진보파가 항상 의회를 지배한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상원과의 이견은 진보파의 의도에 싱당한 차질을 줄 수도 있다. 사회문제에 대해 하원보다 진보적인 상원은 그 대신 경제문제에는 하원보다 보수적이었다. 소비자보호를 위한 연방기구의 창설에 반대한 것도 상원이며 해외무역법에도 엉뚱한 첨가조항을 붙여 통과를 방해한 것도 상원이었다.
세제개혁·국민건강보험 및 공공고용법 등 중요한 개혁법을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에는 이것은 중요한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개혁의 전망이 어둡지는 않다. 우선 60년대의 중요한 민권법안이 보수의 벽을 뚫었던 전례가 있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개혁을 공약하여 당선된 75명의 의원들을 포함한 진보파 의원들은 앞으로도 거듭 의회에 진출, 미하원의 주류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76년도 대통령선거에서 「백악관 재탈환」을 노리고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이러한 개혁법안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진보파의 개혁은 의외의 지원을 받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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